현실 풍자… 기발한 패러디… ‘낯익은 2049년’

  • 입력 2009년 2월 13일 02시 59분


① 사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로봇발달사. ② KAIST를 모델로 한 사이스트(SAIST) 연구원들이 로봇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 ③ 개그맨 남희석 씨가 40년 뒤 ‘로봇MC 남’이란 이름의 사이보그로 재탄생했다는 설정하에 카메오로 등장한다.
① 사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로봇발달사. ② KAIST를 모델로 한 사이스트(SAIST) 연구원들이 로봇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 ③ 개그맨 남희석 씨가 40년 뒤 ‘로봇MC 남’이란 이름의 사이보그로 재탄생했다는 설정하에 카메오로 등장한다.
본격 테크노스릴러 소설 본보 연재 한달… “알고 보면 더 재미있죠”

《김탁환 정재승의 테크노스릴러 소설 ‘눈먼 시계공’이 연재 한 달을 넘기면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40년 뒤 한반도가 윤곽을 드러냈다. 뇌 과학기술로 범죄자들을 쫓는 경찰, 로봇격투기대회 ‘배틀원’에 출전시킬 차세대 로봇 연구에 여념이 없는 과학자들이 극에 활력과 긴장을 주는 가운데 이들을 둘러싼 미래사회의 모습이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현대 문화에 대한 패러디, 사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기발한 설정들이 숨어 있어 눈길을 끈다. 알고 읽으면 더 재밌는 소설 속 이모저모를 정리했다.》

○ 2009년 문화에 대한 풍자

현재 국내 ‘미드 열풍’의 주역으로 손꼽히는 과학수사드라마 CSI는 굴욕적이게도 소설 속에서는 고리타분한 ‘고전드라마’다. 첨단 뇌 과학기술로 사건 발생 당시 상황을 복원할 수 있게 되면서 CSI의 사건들은 반나절이면 해결 가능하기 때문이다. 웹 2.0은 웹 5.0까지 진화했고 위키피디아는 버전 12.5까지 업데이트됐다. 2002년 일본 도쿄에서 개최됐던 휴머노이드 로봇격투기대회 ‘로보원’은 이족보행로봇격투기대회인 ‘배틀원’으로 발전해 인기를 누리고 있다. 현재의 이종격투기 격인 셈이다. 지금까지도 각종 분쟁과 전쟁의 빌미가 되고 있는 국가와 민족 개념은 미래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사이보그와 로봇, 인간 간의 갈등이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 대중문화 패러디

소설 속 등장인물, 연속극, 책 제목 등을 유심히 보면 ‘패러디의 향연’을 맛볼 수 있다. 9회부터는 사이보그가 된 개그맨 남희석 씨가 카메오로 출연해 ‘로봇MC’ 남이란 이름으로 ‘로봇들의 수다’를 진행하며 활약을 펼친다. 김탁환 정재승 교수는 “앞으로도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상징성 있는 사람들을 작품 속에 등장시켜 문명의 발전에 맞춘 이들의 변화상을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미래의 인기 드라마인 ‘특별시의 연인’, ‘안드로이드 프린스 2호점’은 누가 봐도 ‘파리의 연인’, ‘커피프린스 1호점’을 연상시킨다. 이 밖에도 존 그레이의 베스트셀러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와 흡사한 제목의 연속극 ‘토성 남자의 저주 명왕성 여자의 사랑’, 제러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과 엇비슷한 미래의 저서 ‘도시의 종말’ 등이 등장해 웃음을 유발한다.

○ 실존 대상에서 차용한 소재들

사실에 상상을 가미한 설정은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가장 손쉽게 알아챌 수 있는 것이 미래과학자들의 연구기관 사이스트(SAIST)로 카이스트(KAIST)에서 따온 이름이다. 국가 개념이 사라졌다는 설정 때문에 KAIST의 첫 이니셜인 K(Korea)를 S(Seoul)로 바꿨다. 두 저자는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로 디지털 스토리텔링 랩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통섭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다윈과 핀치들’이라는 밴드와 이들의 데뷔곡 ‘적자생존’도 실제 다윈이 갈라파고스 제도의 섬에 서식하는 핀치새를 보고 진화론 개념에 착안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 유머러스한 설정이다.

○ 과학의 고수들은 놓치지 않는다

과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과학자들과 그들의 실험이 실존인물을 모델로 했다는 점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조류독감을 손쉽게 치료할 수 있는 ‘토미플루’는 현재 특정 제약회사의 약 이름과 흡사하다. 로봇공학자로 등장하는 킹 모라벡, 오드니 스미스 등은 이 분야의 석학으로 꼽히는 실존인물 한스 모라벡과 로드니 브룩스를 모델로 했다. 정재승 교수는 “과학적 설정에 대한 신뢰를 주기 위해 실존인물 혹은 그들과 연관된 캐릭터를 썼다. 굳이 몰라도 상관없지만 이런 맥락까지 이해할 수 있다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눈먼 시계공

연재소설의 제목 ‘눈먼 시계공’은 진화생물학 분야의 고전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가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박을 파고든 동명의 저서에서 따왔다. 도킨스는 신이 세상을 창조한 것을 시계공이 복잡하고 정교한 시계를 만드는 일에 비유했던 19세기 신학자 윌리엄 페일리의 논리를 반박하며 세상은 계획이나 의도가 없는 진화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뜻에서 ‘눈먼 시계공’이라 불렀다. 김 교수는 “도킨스는 진화론의 무목적성에 이 개념을 썼지만 이 소설은 좀 더 직접적으로 로봇을 만드는 이들을 시계공에 비유해 그려 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지금까지 연재된 소설 ‘눈먼 시계공’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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