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 수시 조율 ‘막후정치’… 말년 병세도 자세히 언급
조선 제22대 왕 정조(1752∼1800)가 독살됐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허구임을 뒷받침해주는 정조의 어찰(御札·왕의 편지)첩이 다량으로 나왔다. 이 어찰첩(帖)은 또 정조가 신하와의 비밀스러운 의견 조율을 통한 막후정치에 능한 군주였다는 점도 보여주고 있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이 어찰첩은 모두 6첩으로 정조가 1796년 8월 20일(이하 음력)부터 사망하기 13일 전인 1800년 6월 15일까지 직접 쓴 편지 299통이 담겨 있다.
김문식 단국대 교수는 “정조가 말년에는 병세를 심환지에게 상세하게 알렸는데 만약 심환지를 의심했다면 그런 사실을 밝히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편지 내용으로 미뤄 보면 독살보다는 병으로 자연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조는 또 경연에서 어떤 말을 주고받을지에 대해 심환지와 미리 말을 맞추자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정조가 원하던 일을 심환지가 상주(上奏·왕에게 말씀을 아뢰던 일)토록 해서 마치 신하의 뜻에 따른 것처럼 처리한 일도 곳곳에서 나타난다. 어찰첩엔 신하들에 대한 평가, 여론 동향에 대한 관심, 인사(人事)에 대한 의견 교환, 비밀스러운 지시 등도 담겨 있다.
고문헌 연구가 박철상 씨는 “정조는 1798년 12월 3일부터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란 호를 인장에 새겨 봉함인(封緘印)으로 사용했는데 이번 어찰첩에 실린 겉봉 중에 이 봉함인이 있어 정조의 어찰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