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무덤은 ‘은둔의 삶’ 대변하는 듯…‘황금빛 유혹’ 클림트展

  • 입력 2009년 1월 28일 02시 59분


히칭 묘지에 자리한 클림트의 소박한 무덤. 빈=고미석 기자
히칭 묘지에 자리한 클림트의 소박한 무덤. 빈=고미석 기자
오스트리아 빈 시내 중심가에 자리한 분리파 전시관은 클림트가 이끌었던 빈 분리파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됐다.
오스트리아 빈 시내 중심가에 자리한 분리파 전시관은 클림트가 이끌었던 빈 분리파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됐다.
클림트의 ‘영혼의 동반자’였던 에밀리 플뢰게(사진)의 초상을 전시 중인 빈 미술관의 2층 입구.
클림트의 ‘영혼의 동반자’였던 에밀리 플뢰게(사진)의 초상을 전시 중인 빈 미술관의 2층 입구.
《아무런 장식도 없다. 세기말을 떠들썩하게 뒤흔든 예술가의 삶에 대한 수사도 없다. 이름만 덩그렇게 새긴 돌비석이 투명한 겨울 햇살 아래 덤덤하게 서 있다. 그 아래 잠든 주인공이 바로 황금빛 그림의 거장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 화려하게 치장한 이웃들과 대조적인 소박한 무덤이다.

오스트리아 빈의 명소 쇤부른 궁전에 가까운 주택가에 자리한 히칭 묘지. “클림트 순례자들이 자주 찾아온다”고 말하는 관리인이 건넨 지도를 한참 들여다봐도 ‘5구역 194호’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천재 화가의 긴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넓은 공원묘지엔 안내판이 따로 없다. 같은 곳을 빙빙 돌고나서야 자작나무 한 그루와 벗한 묘비를 만날 수 있었다. 대중 앞에 나서길 꺼렸던 화가의 사생활이 베일에 가려있듯 사후에도 그의 은둔은 계속되는 것일까. 클림트 한국전을 앞두고 그의 발자취를 찾는 여정은 이렇듯 헤맴으로 시작됐다.》

○ 빈 14구 린처슈트라세 247번지

히칭 묘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한적한 거리. 5층짜리 ‘무뚝뚝한’ 시영아파트 앞을 몇 번 오간 끝에 1층 외벽에 붙은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클림트의 독특한 서명과 ‘생가 터’라는 설명이 담겨 있다.

클림트는 1862년 7월 14일 빈 근교 비움가르텐에서 가난한 금속세공사의 일곱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먹고살기도 빠듯했지만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장학금을 받아 빈 미술공예학교를 다닌 클림트는 벽화를 그리는 장식미술가로 일하며 명성을 쌓는다. 당시 유행했던 역사화 양식을 따르긴 했지만 그의 마음속엔 새로운 그림에 대한 욕구가 싹트고 있었다. 1894년 빈대학의 철학 의학 법학을 상징하는 천장 장식화를 의뢰받은 그는 변화를 시도한다. 섬뜩한 불안과 죽음의 이미지를 담은 초안은 사회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비난을 받는다. 구태의연한 풍토에 실망한 그는 1897년 기존 미술가협회에서 탈퇴해 새로운 예술가 모임인 ‘분리파’를 만들고 초대 회장을 맡는다.

○빈 1구 프리드리히슈트라세 12번지

시내 중심에 자리한 ‘분리파 전시관’은 1898년 완공된 분리파의 전용 전시장이다. 황금빛 공을 얹은 건물은 회화 공예 건축 등이 통합된 총체예술을 지향했던 분리파의 이상을 구현한 공간. 이곳을 통해 유겐트스틸(아르누보)이 꽃피우고 프랑스 인상파 등 해외 동향이 소개된다. 정문 위에 황금빛 글자로 새긴 ‘각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이란 분리파 구호를 되새기며 지하로 내려간다. 1902년 분리파 전시에 선보였던 클림트의 벽화 ‘베토벤 프리즈’(길이 34m)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성소에라도 들어온 듯 고요한 침묵이 흐른다. 관객들은 찬연한 금빛으로 빛나는 벽화를 응시하며 말을 잃는다. 그만큼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베토벤을 위해 헌정된 1902년 전시는 예술가 21명이 힘을 모아 총체예술의 절정을 보여준다. 이 전시의 초점은 나약한 인간이 겪는 고통과 예술을 통한 인간구원에 대해 다룬 클림트의 벽화. 나체의 여인과 성의 묘사로 파란을 일으켰지만 지금은 클림트 팬들의 필수 순례 코스다.

○빈 7구 베스트반슈라세 36번지

가족 사랑이 남달랐던 그는 돈을 벌자 시내에 번듯한 아파트를 장만해 어머니와 누이들과 함께 살았다. 죽을 때까지 20년을 살았던 베스트반슈라세 36번지를 찾아가니 고풍스러운 옛 모습을 간직한 5층 건물이 남아 있다. 가정집으로 사용되는 터라 마지막 거처라는 표지판만 남아 있다. 클림트의 숨결이 밴 아파트를 떠나 마지막 아틀리에(빈 13구 펠트뮐가세 15a번지)를 찾으니 철문이 닫혀 있다. 클림트기념사업회가 관리하는 건물은 개·보수작업으로 인해 잠정 폐쇄 중이다. 늘 발목까지 내려오는 풍성한 작업복을 입고 작업했던 클림트. 옷 벗은 모델에 둘러싸여 작업하다 산책 나온 그의 모습을 그려본다. 그가 아꼈던 수많은 덩굴식물과 꽃들이 자리했던 정원은 이제 텅 비어 있다.

세속적 인기에 자족하기보다 험난한 도전을 선택하고, 현실에 순치되기보다 자기 마음이 가리키는 길을 고집했던 화가. 그 자유로운 영혼의 흔적을 되짚는 여정을 끝내며 문득 클림트의 말이 생각났다.

‘만일 화가로서 나에 관해 알고 싶다면… 내 그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라. 그러면 그 안에서 나라는 사람과 내가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빈=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클림트의 여인’ 에밀리 플뢰게▼

숱한 여성과의 염문 속에도

평생 마음 바친 유일한 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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