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바보들, 히틀러를 찬미하다니!

  • 입력 2009년 1월 24일 03시 00분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로베르토 볼라뇨 지음·김현균 옮김/280쪽·1만 원·을유문화사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칠레 출신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이 소설은 백과사전 형식으로 아메리카 나치문학 작가들을 설명하는 독특한 형식을 띠고 있다. 모두 가상의 작가이지만 작가는 인물약전 형태로 나치즘에 경도됐던 극우 작가 30인의 삶과 작품 세계를 실제처럼 능청스럽게 기술해 나간다. 이들의 국적과 성별, 인종, 생몰연대, 출신배경은 가지각색이지만 시대와 문학의 열패자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 작가들은 당대의 유력한 비평가들에게서 아예 무시당하거나 평단과 독자로부터 거의 아무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작품들을 놀라운 열정을 가지고 꾸준히 창작해 낸다.

저자는 이렇듯 시대착오적 사상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재능 없는 극우 문학가들의 행적에 대해 사실과 경계를 교묘히 넘나들며 능수능란한 입담을 펼쳐 보인다. 이 책에 등장하는 브라질 출신의 루이스 퐁텐 다 소우자라는 작가의 삶을 보자. 그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볼테르에 대한 반론’을 펴내며 방대한 분량, 폭넓은 연구 자료, 젊은 나이 덕분에 일시적으로 문학계의 찬사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디드로에 대한 반론’ ‘달랑베르에 대한 반론’ ‘몽테스키외에 대한 반론’ ‘루소에 대한 반론’ 등 계속해서 ‘∼반론’ 시리즈만 창작한다. 결국 그가 써낸 ‘마르크스와 포이어바흐에 대한 짧은 반론에 이은 헤겔에 대한 반론’은 대다수 철학자와 독자로부터 정신병자의 작품으로 간주되기에 이른다. 이 저서에서 그는 빈번하게 헤겔과 칸트를 혼동했을 뿐만 아니라 장 폴 사르트르, 프리드리히 횔더린 등과도 혼동했기 때문이다. 그 뒤에도 그는 계속해서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비판”을 비롯해 사르트르 저작의 극히 일부분에 방대한 분량을 쏟아 비판하는 작품을 왕성하게 써내지만 브라질 철학계와 대학 사회에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쓸쓸히 죽고 만다.

이 책은 정치적으로는 나치즘에 거침없는 냉소와 야유를 보내고 있지만 비주류이자 아웃사이더 문인들의 삶에 대한 연민의 시선이 함께 묻어난다. 사실 이들이 쓴 작품은 ‘좌파와 우파를 불문’하고 그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는 졸작들이기 때문이다. 쿠바의 에르네스토 페레스 마손이란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 각 장 첫 글자로 ‘아돌프 히틀러 만세’ ‘미국, 너는 무얼 기다리나’ 등의 아크로스틱을 구성한 탓에 수감생활을 한다. 하지만 출옥 후 자신이 탈고한 소설이 전체가 암호로 구성된 ‘슈퍼 수수께끼’라고 주장해도 출판사와 독자들은 무관심하다. 문단에서 조롱당하고 출판 에이전시로부터 사기당하기 일쑤인 구스타보 보르다라는 과테말라 SF 작가는 이런 일로 기가 꺾이는 대신 이 모두를 ‘유대인과 고리대금업자들 탓’으로 돌리며 주목받지 못하는 작품 활동을 계속한다. 이들의 나치 행적은 분명한 신념과 세계관으로 인해서라기보다는 히틀러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지극히 사적인 계기나 감정적 이유 때문이며 그나마도 그런 계기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분명한 인물들 간의 대화 및 무수한 강과 바다에 대한 무질서한 묘사’로 가득하거나 ‘연애소설, 스파이소설, 회고록, 정치 팸플릿 등 모든 문학 장르의 거칠고 무질서한 혼합’인 작품들을 줄기차게 써냈던 작가들. 누구도 읽지 않는 문학잡지를 창간하거나 본인의 의도와 달리 사회에 어떤 파장도 일으키지 못하는 작품들을 발표하며 스러져 갔던 작가들…. 나치문학가 30인의 우스꽝스럽고 안타까운 삶이 저자의 위트 넘치는 문장으로 인상적이고 강렬하게 재현된다. 작품을 관통하는 블랙유머의 코드 덕분에 작품을 읽는 내내 곳곳에서 웃음이 터진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동아일보 주요뉴스]

▶ 교복값 동결… 연예인 광고도 중단키로

▶ 러시아 ‘9세 소녀영웅’…한밤 화염 속 사촌동생 4명 구해

▶ “삼성마저…” 삼성전자 첫 분기 적자, 경제먹구름 현실화

▶ “암으로 떠난 남편 뜻”…하늘나라에서 온 ‘사랑의 떡’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