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핏줄 강요 ‘민족주의’ 당위성 사라져”

  • 입력 2009년 1월 22일 02시 55분


신기욱 스탠퍼드대 교수 방한

“美처럼 다민족 가치 수용해야”

“미국이 패권을 잡은 것은 다양한 민족을 (시민으로) 수용했기 때문입니다.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는 한국의 민족주의도 혈통이 아니라 그 사회의 가치를 공유하는 민족주의로 변화해야 합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APARC) 소장인 신기욱(사회학·사진) 교수는 21일 서울 중구 태평로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의 종족적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를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핏줄을 따지고 외부와 선을 긋는 폐쇄적인 민족주의가 아니라 그 사회의 가치를 공유하는 민족주의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저서인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창비)의 출간을 앞두고 20일 한국에 왔다. 3년 전 미국에서 영문으로 출간된 책(▶본보 2006년 6월 13일자 A21면 참조/美 스텐퍼드대 신기욱 교수 ‘한국의 종족적 민족주의’ 발간)이 이번에 한글로 번역돼 23일 나온다. 이 책에서 신 교수는 한국의 민족주의가 일제 침략에 대한 대항담론으로 형성되면서 혈연과 단일민족 의식이 강조되고 종족적 민족주의 성격을 띠게 됐다고 분석했다.

1983년 미국 유학 길에 오른 뒤 25년 넘게 다인종, 다민족 사회에서 살고 있는 그는 “한국 사회는 이제 단일민족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와 국제결혼이 증가할 뿐 아니라 출산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사회의 역동성을 유지하려면 포용 사회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인들에게 한국의 민족주의는 “섬뜩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며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등을 메운 ‘붉은 물결’을 거론했다.

“당시 ‘우리는 하나’라고 했던 것은 외국에서 보면 섬뜩하고 부정적인 느낌이 강했습니다. 같은 색 옷을 입고,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이 어찌 보면 파시즘과도 통한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민족주의에 기울어진 한국 지식사회의 빈곤한 풍토도 비판했다.

“우리 사회의 진보와 보수는 민족주의에 기대왔습니다. 독도 문제를 보세요. 진보 보수 막론하고 다 들고 일어납니다.”

신 교수는 “현실은 빠르게 변하고 있으므로 이제 한 핏줄을 강요해야 하는 역사적 당위성이 사라졌다”며 “외세의 침략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민족이 필연인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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