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스트레스트레스트레스…스테인레스”열받아 강철됐다

  • 입력 2009년 1월 16일 02시 58분


■ 연극 ‘강철왕’

왕기(조운)는 댄서가 되고 싶었다. 죽도록 춤을 춰 무용과를 우등으로 졸업한 것도 그래서였다. 하지만 가업을 물려주려는 아버지 김상국(조영규)은 달랐다. ‘단 한번, 어미와의 관계로 내 전체를 지배하려 드는 무자비한 채권자’ 아버지. 그의 뜻은 완고하고 집요했다.

결국 왕기는 강성 열처리공장의 ‘잠재적 오너’ 김대리가 된다. 의도치 않은 공장행에 스트레스 잔뜩 받은 왕기. 다른 한편에서는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던 공장 근로자의 분노가 슬슬 달아오른다.

연극 ‘강철왕’(연출 고선웅)은 속사포처럼 쉴 틈 없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두 시간 내내 대사 하나라도 놓칠까 귀를 쫑긋해야 하는 고충은 그렇다 치자. 방대한 분량의 대사를 외워야 했을 배우들이 안쓰러울 정도다. 때때로 무대 위 허공에는 배우들의 침이 사정없이 튀긴다.

‘강철왕’은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고선웅의 재기가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연극 ‘마리화나’ ‘삼도봉美스토리’에 이어 뮤지컬 ‘남한산성’의 극본을 준비 중인 그는 현재 서울 대학로에서 소문난 이야기꾼이다. 끊임없는 언어유희, 질펀한 직설법, 신랄한 풍자, 엇박자 유머…. 두둑한 배짱을 밑천 삼아 말을 부리는 능력이 예사롭지 않다.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까지 섞은 그의 장광설(長廣舌)은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스트레스를 받아, 커뮤니케이션의 혼선, 대화의 단절, 그 어떤 외압들, 소음 갈등 불법과 비합법의 범람, 부조화, 존재의 표류, 증오에 대한 몸부림, 절망, 쏟아지는 비난, 무기력한 자아, 자 스트레스를 계속 받아, 스트레스 스트레스 스트레스, 스테인레스! 스트레스 애프터 스테인레스!”

‘스트레스, 스테인레스를 만들다’라는 연극 카피처럼 스트레스에 못 이겨 ‘스테인레스’를 외치던 왕기는 정말 ‘스테인레스 인간’이 된다. 공장 노동자들의 실수로 450도 고온의 열처리 기계에 딸려 들어가 70분 동안 익어간 것. 이로써 ‘인류 역사의 흐름을 뒤바꿀 수 있는 미증유의 사건’으로 강철왕이 탄생한다. 후반부에선 강철왕의 유명세를 이용해 한몫 벌어보려는 야비한 부정(父情)과 호들갑 떠는 의학계 언론계가 우스꽝스럽게 묘사된다.

연출가 고선웅은 “스트레스에 노출된 현대인에게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다면 힘껏 받아버리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며 “거창한 현실 세태의 풍자보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연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월 15일까지. 1만5000∼3만 원.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02-764-7462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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