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8년 美푸에블로號선원 송환

  • 입력 2008년 12월 23일 03시 07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앞,

미합중국 정부는… 미국 함선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령해에 침입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반대하는 엄중한 정탐행위를 한 데 대해서 전적인 책임을 지고, 이에 엄숙히 사죄하며 앞으로 다시는 어떠한 미국 함선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령해에 침입하지 않도록 할 것을 확고히 담보하는 바입니다.…

미합중국 정부를 대표하여, 미 육군소장 길버트 에치 우드워드’

1968년 12월 23일 오전,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우드워드는 판문점에서 북한 측 대표 박중국과 만나 이 같은 내용의 사과문에 서명했다.

그러나 서명 직전 우드워드는 “이 문건에 서명하는 유일한 이유는 인도적인 견지에서 승무원들을 돌려받기 위해서이지 북한이 일방적으로 작성한 사과문의 내용에 서명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내용의 구두 성명을 발표했다.

그해 1월 동해에서 발생한 미군 첩보함 푸에블로 호 나포사건을 11개월 동안의 실랑이 끝에 최종 마무리하는 절차였지만, 누가 보기에도 기묘한 외교적 타협이었다.

어쨌든 북한은 미국의 영해 침범과 첩보활동을 시인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사과문을 받아냈고, 미국은 서명 직전 미리 문건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는 성명을 내고 승무원들을 송환받을 수 있게 됐다.(이문항의 ‘JSA-판문점·1953∼1994년’)

그로부터 2시간 뒤 푸에블로 호 함장 로이드 부커 중령을 선두로 미군 82명과 1구의 시체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남쪽으로 왔다. 북한 측 확성기에서는 승무원들이 석방 전에 밝힌 “석방해 주어서 감사합니다”라는 영어와 한국어 인사가 계속 흘러나왔다.

이들이 무사히 도착하자 미국은 즉각 다시 성명을 내 사과문을 철회했다. 부커 함장은 북한 측이 부하들을 하나씩 총살하겠다는 위협 속에서 북한 영해를 침범했다는 자백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그는 자백서에 북한이 알아차리지 못한 저항의 표시를 남겼다고 밝혔다. 자백서에 ‘우리는 북한과 위대한 지도자 김일성을 피언(paean)한다’고 쓴 것. ‘paean’은 찬가, 감사의 노래를 뜻하는 말. 하지만 이 단어는 ‘피 온(pee on·∼에 오줌을 누다)’과 발음이 유사했다.

북한은 아직까지 푸에블로 호 선체와 장비를 돌려주지 않은 채 ‘미 제국주의에 대한 승리’의 기념물로 평양 외곽의 대동강에 전시해 놓고 있다. 최근엔 미국이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조치를 취한다면 그 대가로 푸에블로 호를 반환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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