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조선의 권력, 책에서 나왔다

  • 입력 2008년 12월 13일 02시 58분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주영하 외 지음/240쪽·1만3000원·휴머니스트

◇조선출판주식회사/이재정 지음/332쪽·1만7000원·안티쿠스

《조선시대는 책의 시대였다. 책은 유일한 정보 매체이자 권력이었기 때문에 어떤 책을 왜 만들어 어떤 식으로 유통시키는지는 당대의 역사적 맥락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조선시대의 책 문화사에 접근한 책이 나란히 나왔다.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는 삼강행실도의 편찬 배경과 유통 과정을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했다.

‘조선출판주식회사’는 조선 왕들이 책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조선의 통치체제를 유지하는 데 출판이 어떻게 활용됐는지 살폈다.》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는 삼강행실도가 어떻게 출판돼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했는지, 어떻게 소비돼 조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추적한다. 특히 이 책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속의 민속학자, 서지학자, 역사학자, 미술사학자, 고전소설 연구가가 함께 집필해 학제 간 연구의 모범을 보여준다.

왜 하필 삼강행실도일까. 효자 열녀 충신 등 조선시대 유교이념을 대표하는 윤리서로 500년 동안 가장 많이 출판된 책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삼강행실도는 세종대에 간행됐다. 당시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나 세종이 백성을 교화할 도덕 교과서를 만들라고 한 것이 표면적 이유다.

이 책은 이면의 배경을 드러낸다. 조선 초기는 부계 사회가 아니었다. 성인 남자가 처가살이를 했고 외가 조상의 제사를 모시며 처가와 외가에서 재산을 물려받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도 왕실의 기반이 탄탄하지 못한 상태였다. 신하 중 상당수가 고려 출신이었고 고려 왕조의 이념과 사상을 따르는 이들도 많았다.

새로운 통치 이념인 유교 문화를 확립하는 것이 조선 왕실의 생존을 위한 핵심 과제였던 것이다.

성종 12년인 1481년 삼강행실도는 크게 변화한다. 전국적 독자층의 확보를 위해 한문을 한글로 풀어쓴 삼강행실도 언해본과 삼강행실도의 330개 에피소드를 105개로 줄여 간략히 만든 선정(選定)본이 출현했다.

‘조선출판주식회사’에서 소개한 조선 왕들의 모습은 출판사의 편집장을 연상시킨다.

1781년 7월 9일 아침 정조는 전·현직 대신을 모두 소집했다. 영조의 ‘보감(寶鑑·선대 왕의 훌륭한 업적을 모은 책)’ 편찬을 의논하기 위한 자리였다. 정조는 이 자리에서 보감 편찬을 위한 자료 수집 방법, 편찬 담당자를 정했으며 보감 인쇄까지 직접 관여했다.

1434년 세종은 ‘자치통감’을 편찬하는 일에 몰두했는데, 책을 만드는 동안 매일 밤늦게까지 원고를 직접 교정 봤다. 영조는 재위 동안 무려 9900권의 책을 썼다.

중종은 1542년 민간의 책을 모으는 일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책을 바치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하나뿐인 책은 베껴 쓴 뒤 돌려주라고 했다. 선조도 민간이 소장한 책을 찾아내는 데 전력을 다했다.

중국에 간 조선 사신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책을 구해오는 일이었다. 어찌나 열성이었던지 청나라 관료였던 강소서라는 사람이 “조선 사람들은 책을 제일 좋아한다. 무릇 사신이 올 때는 50∼60명이 시장에 나와서 … 비싼 값을 아끼지 않고 사서 돌아간다. 그래서 조선에 오히려 진귀한 책들이 소장돼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왕이 책의 활자까지 정할 정도였는데 여기에는 정치적 이유가 숨어 있었다. 세조는 자신이 조카인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를 찬탈할 때 안평대군이 이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안평대군의 글씨로 만든 활자체를 없앴다.

책에 대한 왕실의 지대한 관심은 책의 간행과 유통을 국가가 통제하는 데까지 나아갔는데 이 때문에 책의 활발한 유통이 막히는 한계도 나타났다.

대표적 사례가 책을 자유롭게 사고파는 서점의 설치를 금지한 것이다. 저자는 “국가 차원의 책의 보급은 결국 유교 통치를 위한 것이어서 백성의 즐거움에는 관심이 없었고 고위 관료들은 책을 소유하는 특권을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책으로 백성을 다스리려 했지만 역설적으로 책이 백성에게 보급되는 것을 막았던 셈이다. 저자는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관으로 조선시대 금속활자를 연구해 왔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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