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 살며 천국을 꿈꾸다, '난쏘공'의 작가 조세희

  • 입력 2008년 11월 15일 15시 02분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었다. …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 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난장이’는 이 시대의 힘없는 약자를 나타내는 상징어였다. 그 난장이는 천국을 꿈꾸며 작은 공을 쏘아 올렸다. 그 난장이는 이제 천국에 가 있을까.

도시빈민의 삶을 통해 경제 성장의 그늘에 대한 아픔을 그려 냈던 문제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출간 30주년을 맞았다.

1978년 6월 첫 출간된 이 소설은 1996년 4월 100쇄, 2005년 11월 200쇄를 넘겼다. 2007년 9월 100만부, 2008년 11월 현재 통산 105만부가 팔렸다. 이 소설은 최근 치러진 2009 대학 수학능력시험 문제에도 등장했다.



▲ 영상취재 : 정주희 인턴 기자

병마와 싸우며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던 작가 조세희(66)씨도 오랜만에 독자들 앞에 섰다.

‘난쏘공’의 기념낭독회는 14일 오후 5시 서울시 종로구 교보빌딩(광화문점) 10층 대강당에서 열렸다. 작가 조씨를 비롯해 배우 조재현(43), 소설가 이혜경(48)씨 및 200여명의 독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문학평론가 권성우(45)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다. 행사는 작품낭독, 축하공연, 독자와의 대화로 이뤄졌다.

조재현의 음성이 강당을 울렸다. “아버지가 꿈꾼 세상에서 강요된 것은 사랑이다…아버지는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을 벌하기 위해 법을 제정해야 된다고 믿었다. 나는 그 것이 못마땅했었다. 그러나 그날 밤 나의 생각을 수정하기로 했다. 아버지가 옳았다.”

도시재개발로 인해 살던 곳에서 내몰려야했던 가족의 운명. 끔찍한 주변 상황으로 인해 비극적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아버지는 ‘사랑’을 꿈꾸었다. 이 세상은 사랑으로 움직여져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믿음이었다. 절망 속에서도 지켜가는 사랑에 대한 믿음을 소설은 그리고 있다.

조재현씨와 이혜경씨가 소설의 주요부분을 낭독하면서 진행된 기념 낭독회에 이어 후배 및 동료문인들이 조세희의 문학적, 인간적 여정들을 글로 회고한 문집 ‘침묵과 사랑’의 헌정식이 있었다.

작품 활동을 쉬며 오랜 시간동안 입을 닫았던 조세희의 침묵은 침묵 그 자체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는 평을 받는다. 그의 침묵은 침묵을 강요하는 시대와 권력에 대한 저항이었는 시각이다. 조씨는 침묵하면서도 탄광노동자들의 삶을 연구하는 등 보다 나은 인간의 삶을 기원하는 치열한 활동을 했다. 그의 침묵은 결국 인간과 사회에 대한 사랑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조세희는 “난쏘공을 처음 썼을 때 이렇게 30년 넘게 읽힐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다만 내가 살기 싫은 모습의 세상이 그대로 이어지면 자식세대의 미래도 아름다울 것이 없다는 그런 마음을 갖고 썼다”고 말했다.

조세희는 “나는 여러분들 젊은 세대에 희망을 걸고 있다”며 “냉소주의에 빠지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살라”고 당부했다.

정주희 동아닷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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