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인터뷰]홍건표 “보석같은 匠人솜씨, 이대로 잃을순 없죠”

  • 입력 2008년 10월 30일 17시 49분


“무형문화재+디자인산업 효과 무궁무진”
30일 폐막 2008 부천세계무형문화유산엑스포 조직위원장

2006년 겨울 중요무형문화재 ‘바디장(筬匠)’ 구진갑 옹이 9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전수자를 남기지 못한 구 옹의 죽음은 바디장의 전승 단절을 의미한다. 바디란 베틀의 핵심 부분으로 베의 굵고 가늚을 결정한다. 고인은 바디의 제작 기술을 인정받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4호 벼루장은 1989년 이창호 옹이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으나 그가 죽으며 대가 끊겨 자동 소멸됐다.

지금까지 3건의 중요무형문화재가 기능보유자 또는 조교의 사망으로 해제되거나 해제 직전에 있다. 이외에 12건은 문화생이 2인 이하로 명맥을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무소속 송훈석 의원은 최근 국정감사장에서 “전승은 고사하고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가운데 재산과 소득이 한 푼도 없이 무허가 건물에서 와병중인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지적했다. 중요무형문화재들의 나이가 많은 것도 보존에 큰 장애다. 역대 중요무형문화재 가운데 전승이 중단됐다가 재 전승된 사례는 ‘화장(靴匠)’ 단 1건뿐이다. 그만큼 한번 맥이 끊기면 다시 잇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이런 가운데 경기도 부천에서 뜻 깊은 행사가 열려 관심을 모았다.

‘2008 부천세계무형문화유산엑스포(이하 엑스포)’는 고사위기에 처한 우리 무형문화재의 보전과 계승, 그리고 산업화를 함께 고민하는 장이었다. 소리 소문 없이 개막했지만 25만 명이 다녀갔다.

행사를 이끈 홍건표 조직위원장(부천시장·사진)은 “국민들이 무형문화재에 대해 너무 무관심해 홍보조차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지난 10일부터 30일까지 부천 상동에서 열린 엑스포에는 유네스코에 등록된 몽골의 장조, 베트남의 공 음악 등 해외 무형문화재들과 우리나라 무형문화재들까지 공연 82팀-110회과 전시 270명-739점이 참여했다. 일반 시민들이 직접 옹기나 금속공예를 체험해 보는 행사도 있었다.

엑스포 추진 단계에서도 여러 난관에 부딪혔다고 한다. 부천시의회의 이해부족으로 용역 발주를 못하고 국비 지원도 못 받게 됐다. 예산 60억 가운데 20억을 경기도에서 지원했는데 이 돈을 시의회에서 삭감했다. 우여곡절 속에 행사 진행은 결정됐지만 시간과 경비가 부족해 사전 엑스포(PRE-EXPO)형태로 치를 수밖에 없었다.

홍 위원장은 “악조건 속에서 25만 명의 인파가 찾은 것은 고무적”이라고 자평했다.

기자는 홍 위원장을 만나기에 앞서 26일 오후 행사장은 찾았다. 행사 막바지였지만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아 전시관으로 들어가기 쉽지 않았다. 조직위에 따르면 처음에는 단체나 초대장으로 온 관람객이 많았으나, 행사 후반으로 갈수록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가족단위 관람객이 많았다고 한다.

전시장 안에는 금칠한 장롱, 오색실로 수놓은 병풍, 아기자기한 은 식기, 화초장, 나전칠기, 진주 브로치 등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짜리 예술품들이 즐비했다. 가격표를 달지는 않았지만 수억원 가치(보험가 산정기준)의 작품도 있다. 이런 고가품들은 특급 호텔 로비를 장식하거나 주로 재벌가 또는 부유층이 혼수로 주문해 간다고 한다.

♡뵈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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