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이젠 ‘사람’을 들여다보자”

  • 입력 2008년 10월 30일 02시 59분


1930년대 풍경을 담은 사진과 당시의 생활상을 그린 문화 예술계의 작품들. 왼쪽부터 영화 ‘모던보이’의 주인공 김혜수, 창작무용극 ‘경성, 1930’의 한 장면(이상 동아일보 자료 사진), 드라마 경성스캔들의 배우 강지환과 최여진의 극중 모습(사진 제공 KBS), 1930년경 숭례문 주변 사진, 연극 ‘다리퐁 모단걸’의 배우들. 사진 제공 신기루만화경
1930년대 풍경을 담은 사진과 당시의 생활상을 그린 문화 예술계의 작품들. 왼쪽부터 영화 ‘모던보이’의 주인공 김혜수, 창작무용극 ‘경성, 1930’의 한 장면(이상 동아일보 자료 사진), 드라마 경성스캔들의 배우 강지환과 최여진의 극중 모습(사진 제공 KBS), 1930년경 숭례문 주변 사진, 연극 ‘다리퐁 모단걸’의 배우들. 사진 제공 신기루만화경
《문화예술계에서 1930년대를 재조명하는 작업이 활발하다.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가 18일 서울대에서 한일근대미술사 심포지엄 ‘1930년대 경성 그리고 동경’을 연 데 이어 11월 5∼9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는 1930년대 유행한 음악을 들려주는 콘서트 ‘천변풍경-1930’이 열린다. 올해 서울시무용단이 무대에 올린 ‘경성, 1930’, 연극 ‘다리퐁 모단걸’, 영화 ‘모던보이’에 이어 1930년대를 들여다보는 문화예술계의 흐름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 ‘암울한 일제강점하’ 틀 벗고 재조명 작업 활발

미술계에서 처음 시도하는 1930년대 재조명 작업인 한일근대미술사 심포지엄에서 ‘창경원 밤 벚꽃놀이와 요자쿠라(夜櫻)’라는 논문을 발표한 이화여대 김현숙(미술사) 강사는 경성의 단면을 이렇게 들여다본다.

“1935년 4월 중순 경성, 오후 7시가 넘어서자 창경원에는 벚꽃놀이를 구경하려는 나들이객이 몰려든다. ‘게다’를 끌고 나와 ‘사쿠라’를 보며 술을 마시는 일본인들과 양장을 차려입고 이성에게 눈길을 보내는 조선인 모던보이와 모던걸, ‘벚꽃은 그저 꽃’이라며 꽃구경을 나온 노인 등이 한데 어울린 시끌벅적한 인파는 24만 명에 이른다.”(논문 재구성)

같은 심포지엄에서 중앙대 권행가(미술사) 박사가 조선미술관이 주최한 고서화전을 중심으로 바라본 1930년대 경성의 풍경은 “자산가들이 민족 문화의 보존과 계승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고서화를 수집하는 문화가 형성되면서 미술의 상품화가 진행된 공간”이었다.

여러 장르에서 개별로 진행되는 1930년대 재조명 작업을 ‘근대문화’라는 큰 틀에서 종합하려는 학계의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11월 28일 부산외국어대에서 열리는 ‘비동일화의 사고: 식민지시기 한국근대문화의 정체성’ 심포지엄이 대표적이다.

부산외국어대 비교문화연구소(소장 변기찬)가 개최하는 이번 심포지엄은 1930년대를 중심으로 음악(고전·대중) 미술 건축 문학 언론 방송 연극 영화 만화 등 9가지 분야의 문화예술가들이 식민지 상황에서 어떻게 정체성을 확보해 나갔는지 분석한다.

고전음악 분야 발표를 맡은 이경분(음악사) 서울대 강사는 “기존 연구에서는 1930년대를 척박한 풍토였다고만 하는데 당시는 안익태와 윤이상 등 뛰어난 음악가들이 탄생할 정도로 생산적인 요소가 있었다”며 “경성 부민관에서는 일본인과 조선인의 합주가 이뤄졌고 독일에서 일본으로 망명 온 음악가들도 조선을 찾아 음악가들과 교류했다”고 말했다.

1930년대를 재조명하는 문화예술계의 작업은 당시를 ‘식민지 암흑기’로만 보는 게 아니라 일상적이고 미시사적인 분석을 통해 ‘근대문화가 형성되는 공간’으로 보려는 공감대가 커지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연구과제 ‘경성제국대학과 아베 요시시게, 그리고 식민지 도시 경성의 지식인’을 연구한 한국외국어대 최재철(일본어) 교수는 “일제강점기를 독립운동과 친일로만 쪼개서 볼 수는 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이라며 “광복 이후 60여 년이 흐른 뒤 늦게나마 그때를 뒤돌아볼 여유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근대미술사학회 학회지에 ‘동원된 근대: 일제시대 경성을 통해 살펴본 식민지 근대성’이라는 논문을 실은 국토연구원 박세훈(도시계획학) 박사는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 해외로 나가고 일제의 식민통치는 이른바 ‘안정화’되는 시기였다는 점에서 조선의 생활인에게는 일본에서 들어온 새로운 문화를 어느 정도 수용하게 되는 시기였다”고 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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