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냄비로 시작… ‘밥퍼 20년’은 기적”

  • 입력 2008년 8월 29일 03시 03분


26일 최일도 목사가 1988년 11월 서울 청량리역 광장에서 노숙인에게 라면을 처음으로 끓여줄 때 사용한 양은 냄비를 보여주며 다일공동체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최 목사는 한 귀가 닳아 없어지고 찌그러진 이 냄비를 가리키며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사무실에서 가장 눈에 잘 띄고 제 몸에서 가까운 곳에 두고 있다”고 했다. 변영욱  기자
26일 최일도 목사가 1988년 11월 서울 청량리역 광장에서 노숙인에게 라면을 처음으로 끓여줄 때 사용한 양은 냄비를 보여주며 다일공동체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최 목사는 한 귀가 닳아 없어지고 찌그러진 이 냄비를 가리키며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사무실에서 가장 눈에 잘 띄고 제 몸에서 가까운 곳에 두고 있다”고 했다. 변영욱 기자
변영욱 기자
변영욱 기자
“제가 베풀었다는 말을 듣지만 20년 동안 밥을 푸면서 제가 축복받았습니다. 일체가 은혜요 감사일 뿐입니다.”

노숙인과 무의탁 노인에게 무료 급식으로 사랑을 실천해 온 다일공동체의 ‘밥퍼’ 최일도(51) 목사의 말이다.

다일공동체는 다음 달 10일 경기 가평군 설악면 다일자연치유센터에서 창립 20주년 감사예배를 드린다.

26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다일천사병원 6층 사무실에서 만난 최 목사는 “까맣던 제 머리카락이 하얗게 되고, 눈가에 주름이 잡히는 것도 모를 정도로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며 웃었다.

소박하게 시작한 밥퍼 운동의 울림은 컸다. 서울은 물론 부산과 목포에도 밥퍼나눔운동본부가 생겼고 다일천사병원과 다일자연치유센터도 운영하게 됐다. 미국과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네팔 등에 해외분원이 설치됐다.

최 목사는 한마디로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독일 유학을 준비하던 1988년 11월 어느 날 청량리역 광장에서 굶주림에 쓰러진 함경도 할아버지를 만나 유학을 포기하고 냄비를 들게 됐어요. 라면을 끓이다가 주위에서 도와주는 분이 많아지면서 밥을 해드리게 됐고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병원까지 만들게 됐지요. 제가 쓴 책(‘밥 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이 베스트셀러가 돼 그 인세로 몸을 치료한 분들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영성수련원까지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이 모두가 기적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양은 냄비 사역’을 시작한 11월이 아닌 9월 10일 20주년 감사예배를 드리는 이유를 물었다.

“9월 둘째 주는 한국교회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연합주일입니다.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추구하는 다일(多一)의 정신을 기리는 의미가 있지요. 1988년 11월 냄비를 들기 시작한 뒤 다음 해 9월 둘째 주였던 10일에 다일교회 문을 열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다일의 진정한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해 그날에 맞춰 감사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다일교회 담임목사를 맡아 온 최 목사는 내년 9월 교회 창립 20주년 때 담임목사직에서도 물러날 계획이다. 후임은 같은 교회 김일곤 목사가 맡는다.

“주변에서 원로 목사로 남아 달라고 했지만 저는 다일교회를 개척한 초대 목사로 만족합니다. 원로 대접을 받고 싶지 않았어요. 퇴직금도 없겠지만 혹시 주시면 다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싶다고 교회에 전해놨습니다. 20년 동안 한 교회 목사로서 그네들을 섬긴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인데 그것을 물질로 보상받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는 담임목사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다일공동체의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 빈민구제활동에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 우리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다른 나라의 밥 굶는 분들에게 밥을 풀 생각”이라고 했다.

올해 처음 시작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기부운동도 확대할 계획이다.

다일공동체가 7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초청해 자선기금을 마련한 행사에는 700여 명이 몰려 하루 동안 2억 원의 기금이 모였다.

그는 “함께 이웃과 나누고 싶어 하는 CEO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20년 동안 내게 일어난 변화 중의 하나”라고 했다.

불쑥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딱히 재산은 없습니다. 지금 보증금을 걸고 월세로 살고 있는 교회 사택도 다음 목사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해뒀습니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라고 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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