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의 벗은 애국심, 품위있는 삶 만들어”

  • 입력 2008년 8월 27일 02시 46분


■ 세계적 정치철학자 누스바움 교수-곽준혁 교수 대담

《“‘우리나라는 아름답다’는 애국심이 품위 있는 인간의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세계적 정치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61) 미국 시카고대 법학·윤리학 석좌교수는 2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곽준혁(40)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의 대담에서 “애국심이 인류에 대한 보편적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누스바움 교수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주최하는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를 위해 한국을 찾았으며 27일 오후 3시 반 계명대에서, 29일 오후 3시 서울대에서 강연한다.》

“건강-교육 등 삶의 질 향상 위해 국가가 나서야 正義사회

인문학서 배우는 비판적 사고, 사회의 성찰능력 키워줘”

누스바움 교수는 올해와 2005년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선정 100대 지성에 뽑혔다. 그의 정의론은 인간 누구나 신체, 사고, 사회적 교류 등 10가지 본질적 기능이 있고 국가는 개인이 이런 기능을 발전시키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가능성(capability) 이론’으로 요약된다. 그는 이성적 담론뿐 아니라 ‘감정 능력’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며 공감을 이끌어내는 예술의 공적 기능을 ‘공적인 시(public poetry)’로 강조했다.

▽곽준혁=교수님은 문화, 정치 경계를 넘어 모든 국가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규범으로 ‘가능성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교수님의 ‘가능성 이론’은 국가가 책임졌던 많은 부분을 시장으로 넘기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다시 한 번 성찰하게 합니다.

▽누스바움=‘가능성’은 사람들이 실제로 할 수 있고, 될 수 있는 바를 말합니다. 경제 성장뿐 아니라 건강, 교육, 정치적 자유의 평등, 성의 평등 같은 삶의 질과 관련된 측면들이죠. 어떤 사회가 이런 가능성을 타당한 수준으로 보장하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정의롭지 않습니다. 따라서 모든 국가는 ‘가능성’의 최소 기준을 시민의 기본적 권리로서 헌법에 명문화해야 합니다. 교육, 의료 같은 인간의 가능성을 보장하는 최소 조건들은 경제 성장이 이뤄진다고 자동으로 충족되지 않습니다.

▽곽=교수님께서는 자유주의 사상가이면서도 개인의 자유와 권리 보장을 위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획기적이고도 논쟁적으로 들립니다. 자유주의자들은 대체로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위협한다고 봐왔기 때문입니다.

▽누스바움=물론 국가가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국가가 모든 경제를 통제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교육의 불평등이 심화되거나,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될 경우 이런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 정부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곽=교수님은 최근 애국심의 순기능을 강조하셨습니다. 저도 민족주의의 배타적 성격을 시민적 책임성과 품위로 순화시킨 ‘민족주의 없는 애국심’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제시해 왔습니다.

▽누스바움=애국심은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품위 있는 인간의 삶’에 초점을 맞춘 사해동포(四海同胞)적 귀속감, 유대감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세계에 대한 귀속감을 바로 심어주기는 어렵습니다. 추상적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매개 고리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터전에 대한 실체적, 매력적 이미지가 결합된 애국심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역시 우리나라는 아름다워”라는 말을 들어야 하며, 이는 개인들 각각의 윤리적 가치와 결합돼야 합니다.

▽곽=한국 사회가 발전하고 있지만 고등교육은 교수님이 말씀하신 ‘감정 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교육이 이뤄지기 힘든 상황입니다. 교수님은 감정 능력은 타인에 대한 공감대를 유발하며 공감대가 형성되려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인문학적 교양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한국 대학은 취업을 준비하는 학원으로 전락한 듯 보입니다.

▽누스바움=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논쟁하며 분석하는 방법을 인문학을 통해 배워야 정치인들의 수사(修辭)에 현혹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과 자기가 속한 사회의 전통을 성찰하는 능력과 다른 사람이 경험한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키지 않고는 어떤 사회도 올바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인문학이 그런 능력을 갖게 해줍니다. 심지어 경영 분야에도 인문학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상상의 가치와 비판적 사고를 가장 중시하는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이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정리=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곽준혁 교수는…:

△1968년 출생 △고려대 정치학 석사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 박사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탈리아 볼로냐대 방문교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민족주의 없는 애국심과 비지배 평화원칙’ ‘키케로의 공화주의’ 등 다수 출간

:마사 누스바움 교수는…:

△1947년 출생 △미국 하버드대 고전철학 석·박사 △하버드대 철학과·고전학과, 미국 브라운대 철학과, 미국 시카고대 법학·윤리학 석좌교수 △미국·영국 학술원 회원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 ‘클론 그리고 클론’ 등 280여 권의 저서, 논문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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