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도 없어 비만 오면 물난리, 在日 60여년 서러운 곁방살이

  • 입력 2008년 8월 15일 02시 56분


엘리트 학생복 주최 ‘2008 우토로 희망 캠프’에 참가한 초등학생들이 13일 일본 우지 시 우토로 마을에서 ‘우토로 희망나무’라고 디자인해 넣은 현수막을 우토로 주민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우토로=연합뉴스
엘리트 학생복 주최 ‘2008 우토로 희망 캠프’에 참가한 초등학생들이 13일 일본 우지 시 우토로 마을에서 ‘우토로 희망나무’라고 디자인해 넣은 현수막을 우토로 주민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우토로=연합뉴스
일제강점기 군비행장 건설에 강제 동원됐던 한국인들과 그 후손들이 모여 살아온 일본 우지 시의 우토로 마을. 녹이 슬어 새빨갛게 변한 슬레이트 지붕이 이들의 힘겨웠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우토로=김상운  기자
일제강점기 군비행장 건설에 강제 동원됐던 한국인들과 그 후손들이 모여 살아온 일본 우지 시의 우토로 마을. 녹이 슬어 새빨갛게 변한 슬레이트 지붕이 이들의 힘겨웠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우토로=김상운 기자
돈없어 상수도 못써… 슬레이트 지붕 부서질듯

“경제대국 日서 소외된 마을… 아직도 해결 멀어”

14일 일본 교토(京都) 부 우지(宇治) 시 우토로(ウトロ) 마을.

경제대국 일본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낡은 함바(건설현장 인부들이 집단 합숙하는 가건물)집이 줄지어 있다. 군비행장 건설을 위해 강제 동원된 동포들이 처음 이곳에 발을 디뎠던 60여 년 전 시계가 그대로 멈춰 선 듯했다.

녹이 슬어 새빨개진 슬레이트 지붕을 마구 엮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집에 혼자 살고 있는 김군자(80) 할머니는 두 달 전의 물난리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폭우로 도랑이 넘치면서 할머니가 사는 집은 다다미(일본식 마루)까지 물이 차올랐다. 자식들을 외지로 떠나보낸 할머니는 노쇠한 몸을 이끌고 물에 흠뻑 젖은 옷가지와 이불을 겨우 밖으로 끌어냈다.

그는 “젊어서는 아들이 인근의 자위대원에게 얻어맞고 올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는데 집마저 쑥대밭이 됐다”며 눈물을 흘렸다.

178명이 사는 이 마을에서 다다미까지 침수된 곳은 4가구로 우지 시 전체 피해 가구(8가구)의 절반을 차지했다. 하수도 시설이 없는 데다 인근의 일본인 거주지에 비해 지반이 1m 이상 낮기 때문이다. 이 허름한 건물들은 바로 옆 도랑 너머 일본인들의 반듯한 가옥과도 대조적이었다.

상수도 시설조차 주민들의 강력한 요구로 1988년에야 겨우 설치됐다. 하지만 마을 주민의 절반 정도는 설치비 50만 엔이 버거워 아직도 우물에서 물을 길어 먹는다. 우토로 주민회 간부인 이무열(39) 씨는 “올해에만 침수 피해가 다섯 차례였다. 일본 정부가 지난 60여 년 동안 하수도나 지반공사 등 기본적인 생활시설조차 해주지 않고 마을을 방치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989년엔 땅의 소유주인 일본 기업이 주민들을 상대로 퇴거 소송에 들어가 마을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다행히 한국 시민단체인 우토로 국제대책회의 등이 지난해 10월 우토로 마을 면적의 절반인 동쪽 1만560m²를 5억 엔(약 47억 원)에 매입하기로 일본 기업과 계약했다.

이 중 30억 원은 한국 정부가 내고, 나머지는 모금을 통해 조달할 예정. 이를 위해 국제대책회의는 15일부터 2차 모금활동에 들어간다. 매입한 땅에 주택 재건축이 마무리되면 마을 서쪽에 살던 주민들도 옮겨와 함께 살게 할 계획이다.

한편 이날 적막감만 감돌던 우토로 마을은 ‘어린 손님’들을 맞아 오랜만에 생기를 되찾았다. 엘리트학생복이 주최한 ‘2008 엘리트 나라사랑 우토로 희망캠프’에 참여한 수도권의 보육원생 27명이 마을을 찾은 것.

직접 마을을 둘러본 노정은(12) 양은 “주민들이 아직도 옛날 사람들처럼 힘들게 사시는 것 같다. 일본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며 어른스럽게 말했다.

1988년 일본 시민단체인 ‘우토로를 지키는 시민모임’을 만들어 20년간 활동한 사이토 마사키(齊藤正樹) 사무국장은 “주민들이 삶의 터전에서 비참하게 쫓겨나는 것은 겨우 막았지만, 한국인들이 소외되고 있는 일본 사회의 현실을 보면 우토로 문제의 완전한 해결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우지=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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