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시 적힌 茶사발 400년만에 日서 귀향

  • 입력 2008년 7월 14일 20시 26분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붙잡혀 간 조선 도공의 고향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이 담긴 한글 시(詩)가 쓰여 있는 다완(茶¤·차 사발)이 400년 만에 한국으로 오게 됐다.

교토(京都)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이 작품은 기증자인 후지이 다카아키(藤井孝昭) 씨 유족들의 뜻에 따라 17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될 예정이라고 아사히신문 인터넷판이 14일 보도했다.

1983년 사망한 후지이 씨는 교토의 유명한 고미술품 수집가로 생전에 이 차 사발을 박물관 측에 기증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후지이 씨의 부인인 야에(八重) 씨는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남편이 교토의 골동품 상점에서 이 작품을 구입해 소장하게 됐다"고 밝혔다.

'추철회시문다완(萩鐵繪詩文茶¤·하기 지방에서 만들어진 철분 섞인 물감으로 시문을 새긴 차 사발)'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차 사발은 지름 13cm, 높이 11cm의 '하기야키(萩燒)' 작품으로 17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하기야키'는 임진왜란 때 히로시마(廣島) 지방의 세력가인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가 일본에 끌고 간 조선인 도공 이경 등이 야마구치(山口) 현 하기(萩) 지방에서 생산한 도기를 뜻한다.

일본은 당시 조선의 탁월한 도자기와 식기 제작기술을 배우기 위해 수많은 도공들을 납치해 갔다. 이들은 일본 각 지방에 흩어져 여러 도예 명가(名家)를 이뤘으며 이 가운데 심수관가(家)는 대를 이으며 지금까지도 세계적인 차 사발을 만들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황색 차 사발의 겉면에는 당시 표기로 '개가 멀리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한글이 적혀 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그러나 야에 씨는 '개가 울부짖는 소리'라는 부분에 대해 "남편이 차 사발에 적힌 '개'라는 단어를 보고 내게 설명했던 내용"이라며 "옛날식 한글 표기임을 고려하면 실제 해석은 다를 수 있다"고 밝혔다.

기증 작업을 총괄한 교토국립박물관 학예과의 오노 요시히로(尾野善裕) 씨는 "한글이 들어간 하기야키는 이 작품이 일본에서 유일한 것"이라며 "의미 있는 귀향"이라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17일 이 작품을 넘겨받아 검증 작업을 거친 뒤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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