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길준 ‘大韓文典’… 군수 표창장… 만화 ‘캔디’… 인문 100년 한곳에

  • 입력 2008년 6월 26일 03시 25분


국내 첫 ‘인문학박물관’ 100% 즐기기

1895년 단행된 단발령에 반대하다 투옥됐던 면암 최익현이 풀려난 뒤 지인에게 쓴 편지에는 조선의 앞날에 대한 걱정과 답답한 심경을 엿볼 수 있다. 장지연의 ‘만국사물기원역사(萬國事物紀原歷史)’와 ‘대한신지지(大韓新地志)’를 보면 그가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언론인을 넘어서 다방면에 걸쳐 박식한 학자였음이 드러난다.

1900년을 전후해 발간된 외국인들의 한국 여행기에선 그들의 눈에 비친 개항기 한국의 풍경을 확인할 수 있고, 1963년 경북 울진군수가 마을 이장에게 준 표창장에선 당시 정부의 중농정책을 가늠할 수 있다.

7월 1일 일반인에게 문을 여는 국내 첫 인문학박물관에 전시된 것들이다. 서울 종로구 계동 중앙고 교내에 설립된 인문학박물관은 근현대기 한국의 문화사와 인문학의 변천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당 전시품에 녹아 있는 인문정신에 대해 관람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형식으로 각 코너가 구성돼 있다. 하지만 전시품이 3000여 점에 이르다 보니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의미 있는 전시품을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놓치지 말고 봐야 할 전시품은 층별로 어떤 것이 있을까.


▲ 영상취재: 동아일보 사진부 김재명 기자

○ 생활의 발전이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

전체 3개 층 가운데 2층은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 등 1900년대 이후 문명의 변천사를 주로 소개하고 있다. 전시품을 통해 관람객에게 ‘근대는 우리 삶에 어떻게 들어 왔는가’ ‘사람에게 왜 교양이 필요한가’ ‘중산층의 생활이 아름답고 건강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제시한다.

장지연이 쓴 ‘만국사물기원역사’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인류, 우주 등 큰 주제어로 각 장을 구분하고 이에 대한 지식과 생각을 서술한 책. 일종의 백과사전인 셈이다. 한국의 전통 경관문화를 소개하는 코너에선 최남선이 ‘조선의 산수’ ‘조선의 고적’을 소재로 강연한 내용을 담은 강연집이 눈길을 끈다.

1963년 울진군수가 울진면 화성3리 이장에게 준 표창장은 이채로운 전시품. ‘위의 사람은 평소 정부시책의 말단 침투구현에 있어 장으로서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였을 뿐 아니라 중농정책에 적극 호응하여…’로 시작하는 당시 공공문서의 문체가 이색적이다. 1958년 6월 창간된 잡지 ‘사조(思潮)’는 창간 특집으로 ‘대학생의 현실 문제’를 다뤘다. 취미의 변천사를 소개하는 코너에는 1918년 출간된 김규진의 ‘해강죽보(海岡竹譜)’가 전시돼 있다. 서예에 뛰어났고 특히 대나무를 즐겨 그렸던 김규진이 대나무 그리는 방법을 그림과 곁들여 설명한 책이다.

미디어의 변천사를 소개하는 곳은 신문, 라디오, TV 등의 옛날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군데군데 찢어지고 누렇게 색이 바랜 ‘황성신문’은 특히 돋보이는 전시물.


▲ 영상취재: 동아일보 사진부 김재명 기자

○ 20세기 인문학에 나타난 한국인의 세계관과 가치관

3층에는 인문학 정신을 담은 시대별 서적을 전시하고 있으며 문학 음악 미술 등 각 장르의 문화사를 정리했다.

교육을 주제로 한 코너에는 오래된 교과서들이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철수’와 ‘영희’로 추정되는 어린이들이 쓰레기를 줍고 있는 장면을 표지로 사용한 ‘바른생활’ 교과서가 특히 눈길을 끈다.

문학 코너에선 ‘옥루몽’ ‘귀의 성’ ‘자유종’ 등 교과서에서 배웠던 옛 소설의 실물을 볼 수 있다. 시각매체의 변천을 다룬 코너에 전시된 ‘캔디’ 같은 옛날 만화들은 중년층 관람객에게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전시품이다. 음악 코너의 대표적 전시품은 국내 최초의 피아노협주곡인 작곡가 김순남의 ‘피아노협주곡 D장조’ 육필 악보.

근대기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코너도 있다. 영국에서 발행된 신문 ‘팔 말 가제트’의 앵거스 해밀턴 기자가 1905년 펴낸 책 ‘한국에서’는 당시 한국을 ‘신비한 동양의 나라’처럼 추상적으로 다루지 않고 객관적으로 한국의 문물을 소개했다는 점이 특징. 프랑스인 샤를 바라가 조선을 여행한 뒤 1889년 쓴 책 ‘한국 기행’, 미국의 특파원 제임스 크릴먼이 1901년 고종 황제와 인터뷰한 내용을 담아 펴낸 책 ‘온 더 그레이트 하이웨이(On The Great Highway) 등도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든 책들이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 나선 민주당의 신익희 대통령 후보, 장면 부통령 후보의 포스터에는 두 후보의 사진과 함께 익숙한 구호가 새겨져 있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

개화파 학자 유길준이 1909년 내놓은 책 ‘대한문전(大韓文典)’도 역사적 가치가 높은 책으로 꼽힌다. 유길준은 국어를 널리 사용해 국민을 계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일찍이 강조한 학자다. ‘대한문전’은 유길준이 서양의 문법학 체계를 적용해 쓴 것으로 최초의 국어 문법책으로 평가받는다. 김구의 자서전 ‘백범일지’ 1947년판에선 희미해진 흑백사진 속에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고, 1980년대 금서를 모아 놓은 코너에선 자유로운 사상을 억압당했던 당시의 역사를 되새겨볼 수 있다.

박물관 측은 전체 공간을 ‘교육의 장’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하 1층에는 공연이나 강연이 가능한 홀과 몇 개로 구분된 세미나 실을 꾸몄다.

1층에는 도서관을 설치해 1만여 권의 인문학 서적을 비치했다. 1층에는 또 중앙학원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소개하는 ‘인촌실’을 마련했다.

관람료는 어른 2000원, 초중고교생 1000원. 관람시간은 오전 10시 반∼오후 5시 반. 매주 월요일은 휴무. 02-747-6688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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