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직육면체 ‘강철박스’가 세계화 숨은 주역”

  • 입력 2008년 6월 14일 03시 01분


◇ The Box(박스)/마크 레빈슨 지음·김동미 옮김/503쪽·2만5000원·21세기북스

경제에 관한 뉴스를 전할 때 신문에 종종 등장하는 사진이 있다.

바로 부두에 쌓여 있는 컨테이너들이다. 배에서 부두로, 부두에서 배로 쉴 새 없이 오르내리는 컨테이너들은 호황을 의미한다. 반면 산더미처럼 쌓여 꼼짝 않고 있는 컨테이너들의 모습에선 경제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

컨테이너의 모습이 이만한 상징이 된 것은 컨테이너가 현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뜻이다.

저자는 “이 단순하고 볼품없는 ‘강철 상자’가 세계 경제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일으켰다”고 단언한다. 그는 컨테이너의 발달사를 통해 세계 물류와 무역의 변천을 추적했다. 나아가 오늘날 세계화를 가능케 한 원동력도 컨테이너로부터 찾았다.

저자에 따르면 1956년 4월 26일은 세계 경제에서 기념비가 될 만한 날이다. 상선으로 개조된 아이디얼X호가 미국 뉴저지 주 뉴어크 항에서 최초로 58개의 컨테이너를 싣고 출항한 것이다. 컨테이너 운송 시스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전까지 해운무역은 수많은 손길을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였다. 상선이 도착하면 인부들은 배에서 하나씩 짐을 내린 후 일일이 장부에 적고, 부두 근처 창고로 옮겼다. 바나나를 내릴 때도 흠집을 예방하기 위해 40kg이나 되는 박스를 조심스럽게 짊어지고 널판을 내려가야 했다. 컨테이너는 이런 번거로움을 없앴고 인력도 크게 줄였다.

컨테이너의 발달은 제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제조업체들은 소비자에게 가까운 도시에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컨테이너 덕분에 먼 곳까지 대량으로 제품을 실어 나를 수 있게 되자 도시에 있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공장은 대도시 바깥으로 이전했고, 이와 더불어 상품의 원활한 운송을 위해 도로가 발달했다.

컨테이너는 도시의 운명도 뒤바꿨다. 컨테이너 시스템 도입에 미적거리며 구식 부두 형태를 유지한 뉴욕은 항만 도시로서의 위상이 낮아진 반면 이 시스템을 적극 도입한 시애틀은 물류 거점으로 부상했다.

미국과 유럽은 컨테이너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초창기 유럽과 미국의 컨테이너는 크기가 달랐고, 국제 표준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서로 밀고 당기기를 반복한 것이다. 결과는 미국의 승리.

베트남전쟁은 컨테이너 운송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대규모로 군수 물자를 실어 날라야 했던 미군이 컨테이너에서 해결책을 발견한 것이다. 컨테이너 화물선으로 운송을 하면 상선으로 똑같은 양의 화물을 취급할 때 드는 비용의 반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미군은 컨테이너 기술 도입의 후원자가 됐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컨테이너의 역사와 의미를 세세하게 따지다 보니 독자들이 지루하게 여길 만한 대목도 적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 컨테이너 하나에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가 얽혀 있을까 하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한국 독자들을 위해 따로 쓴 서문에서 “한국만큼 이 멋대가리 없이 생긴 직육면체 상자의 덕을 본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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