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고통의 뿌리를 삶의 동력으로

  • 입력 2008년 6월 9일 03시 01분


■조계사서 ‘불교-철학-심리학-생물학서 본 욕망’ 학술연찬회

‘경계와 승화의 대상’ 양면성 지녀

욕망에서 비롯된 번뇌 벗으려 수행

“서양 금욕주의, 인간 음란성 키워”

“인생은 충족되지 않는 욕망과 권태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시계추와 같다.”

쇼펜하워가 내린 인생의 정의 가운데 하나다. 사람들은 누구나 욕망에 시달리지만 욕망을 충족하고 나면 곧바로 권태에 사로잡힌다는 말이다. 이것은 욕망이 인간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뜻하기도 한다.

부처는 욕망을 지칭하기 위해 10개가 넘는 단어를 남겼다. 불교는 이를 토대로 계율을 만들었고, 욕망을 조절하는 것을 기본 윤리 규범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동서양 구분 없이 욕망은 인간을 이해하고 나아가 인간을 구속하는 윤리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탐구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욕망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욕망은 반드시 금지되어야 하는 대상인가.

불교, 철학, 심리학, 생물학적 차원에서 각각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밝은사람들 연구소’가 ‘욕망, 삶의 동력인가 괴로움의 뿌리인가’를 주제로 14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개최하는 학술연찬회. 도서출판 운주사는 발표자들의 논문을 미리 엮어 연찬회 주제와 같은 제목으로 최근 책을 출간했다.

학자들이 말하는 욕망의 정체, 욕망에 대한 시각은 다양하면서 때로는 역설적이다.

선불교를 중심으로 욕망을 풀이한 이덕진 창원전문대 교수는 욕망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켰다. 그는 “욕망에서 비롯되는 생사번뇌는 수행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며 “선불교는 욕망을 가진 인간이 영위하는 삶 그 자체가 부처의 삶이며,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세상 그 자체가 불국토라고 여긴다”고 설명했다.

서양의 금욕주의 때문에 인간 삶의 불행이 싹텄다는 견해도 제시됐다. 박찬국 서울대 교수는 ‘금욕주의와 쾌락주의를 넘어서’라는 글에서 서양철학의 금욕주의적 특징을 살피고 이를 강하게 비판한 니체의 사상을 주로 소개했다. 니체는 “그리스도교는 에로스에게 독을 먹였다. 에로스는 그것 때문에 죽지는 않았지만 그로 인해 성격이 음란하게 변했다”면서 금욕주의적 철학을 비판한 바 있다. 금욕주의가 지배하면서 사회와 문화는 순화되고 평화로워졌지만 사람들은 병적이고 불행하게 됐다는 것이 니체의 생각이었다.

박 교수는 “정신이 관능적인 욕정을 제거하려 할 경우 욕정은 더욱 음란해질 뿐이라는 의미”라면서 “니체의 주장은 관능적 욕구를 제거할 게 아니라 관능을 사랑으로 승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욕망은 경계의 대상이면서 잘 승화해야 할 대상이다. 욕망의 이 같은 모순적 특징은 인도 초기 불교에서부터 논의되어온 것이다.

정준영 서울불교대학원대 교수는 초기 불교의 경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욕망의 네 가지 형태를 통해 욕망의 특징을 고찰했다. 그 네 가지 유형은 감각적 욕망을 뜻하는 카마(kama), 집착적 탐욕인 라가(raga), 사랑을 갈구하는 탄하(tanha), 의욕을 가리키는 찬다(chanda). 라가는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삼독(三毒)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반면 찬다는 결과의 좋고 나쁨을 떠나 그 자체로선 중립적인 성격을 띤다. 정 교수는 “초기 불교는 이처럼 모든 욕망을 부정하지 않았는데 오늘날 우리는 욕망을 부정적인 것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진화발생생물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욕망과 동물의 욕망을 비교했다. 우 교수는 “욕망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인데 동물의 경우 쾌락이 충족되면 욕망이 소멸되지만 인간의 쾌락은 충족됨에 따라 오히려 강화된다는 점이 다르다”고 설명하고 “인간은 도달점 없는 욕망에 중독돼 있다”고 규정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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