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조선 수성기 제갈량 양성지

  • 입력 2008년 6월 7일 02시 57분


◇조선 수성기 제갈량 양성지/한영우 지음/348쪽·1만8000원·지식산업사

조선 왕조 통치체제의 기틀이 잡히고 사회질서가 비교적 안정됐던 15세기 후반(세종∼성종)과 300년 뒤 조선 왕조가 중흥의 꽃을 피운 18세기 후반(정조) 두 시대에 모두 영향력을 미친 사상가가 있다. 수성(守成)기를 이끌고 중흥기에 사상으로 부활한 셈이다.

눌재 양성지(1415∼1482). 저자가 ‘실학적 성리학자’라 부른 학자. 정조가 정신적 스승으로 삼고 그 사상을 정책에 반영했던 주인공이다.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인 저자는 “양성지의 경륜을 총체적으로 정리하고 정조에게 미친 영향을 아우르는 연구서가 없는 점이 아쉬웠다”며 이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양성지의 업적과 시공을 뛰어넘어 정조와 맺는 사상적 맥락을 고찰한 평전이다.

양성지는 15세기 여섯 임금을 섬기며 역사 지리 문학 병법 의학 음악 농법 법률 등 다양한 영역의 서적 편찬을 주도했다. 세조는 그를 “나의 제갈공명”이라고 극찬할 정도였다.

사림파가 득세한 16세기 양성지는 훈구파의 한 사람으로 지목돼 평가절하됐다가 정조대에 이르러 다시 살아난다.

양성지는 경학(사서오경을 연구하는 학문)뿐 아니라 사학과 지리학을 중시했다. 과거 시험에 삼국사기 고려사 등 국사를 넣어야 한다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주장도 펼쳤다. 그는 성리학자였으나, 부국강병보다 인의의 덕을 강조하는 왕도주의가 공리(功利·공명과 이욕)를 버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배척한 당 태종이나 송 태조도 본받자고 말한다. 그들의 실리 정책이 민생 안정, 영토 확장, 고유문화 보전으로 이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는 탁상공론보다 부국강병, 민생 안정과 관련되는 실용 학문과 정책에 관심을 쏟았다. 그는 특히 민본사상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정치에서 민심의 수습을 중시하고 국가 운명의 길고 짧음은 민심의 수습 여부에 좌우된다고 말했다. 그의 실용주의는 외교, 농지제도, 세금제도, 국방정책에도 이르렀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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