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의 어머니’ 토지의 품에 안기다

  • 입력 2008년 5월 6일 03시 00분


장례일정 발표 5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소설가 박경리 씨의 빈소에서 장례위원장을 맡은 소설가 박완서 씨가 향후 장례 일정을 설명하고 있다. 박 씨는 “8일 영결식 이후 강원 원주와 경남 통영에서 준비 중인 추모행사에 들를 것”이라며 “국민의 애도에 감사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사진공동취재단
장례일정 발표 5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소설가 박경리 씨의 빈소에서 장례위원장을 맡은 소설가 박완서 씨가 향후 장례 일정을 설명하고 있다. 박 씨는 “8일 영결식 이후 강원 원주와 경남 통영에서 준비 중인 추모행사에 들를 것”이라며 “국민의 애도에 감사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경리 선생은 강원 원주시의 토지문화관을 찾는 이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다. 텃밭에서 키운 채소며 산에서 얻은 나물 같은 먹을거리를 한가득 손에 들려줬다. 낯선 이들과의 만남을 무척이나 쑥스러워했지만 대(大)작가의 속내는 넉넉했다.

진주여고 시절 “여자가 공부를 하면 뭣하나, 학교 그만두고 시집이나 가지”라며 학비를 주지 않는 아버지에게 “그만두라 마라 할 수 있습니까?”라면서 대들었다는 그. 수줍으면서도 독기 어린 데가 있는 그에게 어머니가 한 말, “토삼 뿌리 같이 혼자 살끼다”는 예언이 되고 말았다. 6·25전쟁 중 남편을 잃고 딸(김영주 씨)을 데리고 세상을 살아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를 견디게 한 것은 문학에 대한 꿈이었다.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소설가 김동리는 시인이 되려는 박경리에게 소설을 써 보라고 북돋웠다. 처음 쓴 단편 ‘계산(計算)’으로 1955년 ‘현대문학’에 초회 추천을 받았고 이듬해 ‘흑흑백백(黑黑白白)’으로 추천을 완료했다. 1962년 발표한 장편 ‘김약국의 딸들’이 출세작이 됐다.

김약국의 딸들은 그가 나고 자란 경남 통영을 배경으로 1860∼1920년 급변하는 사회에 내던져진 한약방 집 다섯 딸의 운명을 그린 소설. 전편에 흐르는 탁월한 토속성과 신비감으로 주목받아 독일어로 번역돼 유럽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듬해 연재를 시작한 ‘파시’ 역시 통영과 부산 지역 민초들의 애환을 소재로 했다. 1965년 제2회 한국여류문학상을 안긴 장편 ‘시장과 전장’은 소시민을 통해 민족의 아픔인 6·25전쟁을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이즈음부터 인간의 역사를 소설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1897년 동학혁명이 실패로 끝난 한가위에서 시작해 1945년 8월 15일 광복에 이르기까지 대하 스토리를 다룬 대작 ‘토지’는 이렇게 탄생했다.

1969년 집필을 시작한 토지는 경남 하동군 평사리의 대지주 최 참판 댁의 비극적인 몰락과 집안을 일으키고자 하는 주인공 서희의 집념이 일제강점기 고통받는 민중의 모습과 어우러진 작품이다. 이 거대한 서사를 쓰기 위해 그는 방문에 고리를 걸고 은둔했다.

집필 중 얼마 되지 않는 고료로 생계를 꾸려간 것은 그가 겪은 커다란 굴곡들에 비하면 외려 일상에 가까웠다. 토지 1부를 쓸 때 암으로 오른쪽 가슴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뒤 보름 만에 퇴원하곤 토지를 써내려갔다. 2부 때는 사위인 김지하 시인의 구속 사태로 가족이 고통을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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