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불혹의 ‘동물원’ 구경 오실래요?

  • 입력 2008년 5월 6일 03시 00분


올해로 결성 20주년을 맞이한 그룹 ‘동물원’이 모처럼 서울시청 앞 지하철역 근처에서 뭉쳤다. 왼쪽부터 유준열 박기영 배영길. 이훈구  기자
올해로 결성 20주년을 맞이한 그룹 ‘동물원’이 모처럼 서울시청 앞 지하철역 근처에서 뭉쳤다. 왼쪽부터 유준열 박기영 배영길. 이훈구 기자
1988년 서울 신촌의 허름한 학사주점 ‘무진기행’.

대학동창, 동아리 친구, 교회 친구, 동네 친구들로 얽히고설킨 대학생 7명이 마주 앉았다. 그저 음악이 좋아 각자 끼적이던 작품들을 품평해 주던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이날 모임은 좀 달랐다. 노래 테이프를 듣고 음반 제작을 제의하러 온 가수 김창완의 주도로 술자리가 이뤄졌다. 술을 깨 보니 친구들은 ‘동물원’이라는 그룹이 돼 있었다.

○ 김광석은 떠나고… 김창기는 쉬지만…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08년 어느 봄날. 노래 제목처럼 ‘시청 앞 지하철역’ 근처의 한 카페에 배영길 유준열 박기영이 다시 모였다. 원멤버 중 김광석은 세상을 떠났고 김창기는 ‘동물원’을 쉬는 중. 이들은 노래 가사처럼 날씨부터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1980년대 후반, 참 어지러운 시기였지만 음악을 하기에는 좋았죠. 활동하지 않아도 음악만 잘 만들면 음반이 팔리던 시절이었어요. 서태지가 1992년에 나왔으니 우리가 조금만 늦게 나왔으면 묻혔을 텐데….(웃음) 다행이죠.”(유준열)

“회색분자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우리는 거대 담론이 아닌 사적인 공간에서 소소한 이야기를 노래했어요. 신기한 건 당시에도 그런 얘기들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는 거죠.”(박기영)

동물원 멤버는 음악 활동을 전업으로 삼지 않는다. 배영길은 영화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고 박기영은 한 대학의 실용음악과 교수로, 유준열은 1991년에 입사한 첫 직장에서 상무로 재직하고 있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신입사원 면접에 들어가야 한다는 유준열은 “이것이 우리가 음악을 좋아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음악으로 전업해서 살기도 힘들고 그만큼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음악은 그저, 남모르게 숨겨 놓고 오래도록 즐겨야 하는 존재예요. 그래야 싫증이 안 나죠.”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이훈구 기자

○ “불혹의 나이, 우리 음악의 화두죠”

이들은 40대. 기타 연습을 하면 아이들이 놀아 달라고 징징대는 통에 고민하는 평범한 가장이다. 그래서일까. 앨범 작업은 2003년 9집을 끝으로 잠잠하다. 오랜 쉼표의 끝을 언제 찍을 건지 묻자 덤덤하게 답한다.

“불혹,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나이잖아요. 예전처럼 방황하는 것은 줄었죠. 하지만 그게 문제예요. 우리 노래는 방황이 밑천이었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죠. 오늘 제가 면접관으로 가는 것도 노래의 주제가 될 수 있겠죠. 하지만 40대 남자의 삶을 부른 노래에 공감해 줄 대중이 있을까요. ‘지금, 우리’를 노래할 수 있는지가 가장 어려운 숙제예요.”(유준열)

동물원의 스무 살 기념공연은 30일 오후 8시 경기 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극장에서 열린다. ‘널 사랑하겠어’를 비롯해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등 대표곡을 부른다. 1577-7766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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