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벽너머… 골목길에서… 남루한 일상의 비명

  • 입력 2008년 3월 8일 02시 52분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김도언 지음/276쪽·1만 원·민음사

김도언(36·사진) 씨는 인간의 욕망에 천착해온 작가다. 위악, 냉소, 억압, 분열 같은 어휘들이 그의 소설과 잘 어울렸다. 첫 장편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에서 작가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했던 단편들과 달리 현실 속으로 파고든다. 그의 눈에 비친 현실은, 전처럼 과격하진 않지만 여전히 우울하다.

실패한 시인 지망생이자 학원 강사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남자 선재. 젊음을 갖고 있지만 그는 일찍이 좌절에 묻혀 버렸다. 자취생활을 하는 선재의 집주인은 어린 아내 소라다. 군대 간 남편을 기다리며 중풍으로 누운 아버지를 돌봐야 하는 소라 역시 일찍이 어둠을 경험했다.

이 소설이 결국 보여주는 것은 선재와 소라가 암울한 일상을 걷어내고 사랑에 닿기까지의 과정이다. 그러나 작가는 사랑을 향해 치닫지 않는다. 오히려 소설은 지독하게 우울한 일상을 꼼꼼하게 보여준다. 소설의 공간은 거의 주택가 골목 단층집, 입시학원 사무실, 모텔 마리아에서만 맴도는데, 그 공간들의 이미지 자체가 그렇거니와 일어나는 일들도 구차하기 이를 데 없다. 단층집의 방음이 제대로 안 되는 벽에서 들려오는 중풍 환자의 웅얼거림, 속된 학원 강사와 어린 양아치가 몸을 섞는 모텔 방, 여자들에게 끝없이 추파를 던지는 원장이 있는 학원의 모습 등이 그렇다.

선재가 이 세속의 공간에서 ‘수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작가는 선재의 아버지가 파계승이라는 점을 알림으로써 암시한다. 선재의 상황이 물론 극단적인 것이긴 하지만, 그는 고해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한 상징이다. 작가는 출구 없는 하루하루를 촘촘하게 묘사함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를 일깨운다.

공간별로 나뉜 89개의 신으로 구성한 형식이 눈에 띈다. 그로 인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에 속도감이 붙는다. 번갈아 등장하는 모텔과 단층집, 학원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듯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퍼즐처럼 맞춰진다.

“멋있는 행동과 세련된 말이 존재하지 않는 삶의 사소함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런 삶은 주목의 대상이 되지 않을 뿐이지 언제나 압도적인 사실로 존재한다”고 김도언 씨는 말한다. 그의 말대로 삶을 구성하는 대부분은 황홀한 순간이 아니라 일상이다. 작가가 ‘생활’을 주인공으로 삼을 때 그 비루함은 백주에 드러난다. “그 어떤 통속과 무협보다 끔찍한 나의 현실”(소설가 구효서)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 소설은 의미 있게 불편하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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