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색조’ 바둑 반란 성공할까

  • 입력 2008년 2월 28일 02시 55분


이세돌 9단(왼쪽)이 2국에서 승리한 뒤 한상훈 2단과 복기하며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 사진제공 월간 바둑
이세돌 9단(왼쪽)이 2국에서 승리한 뒤 한상훈 2단과 복기하며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 사진제공 월간 바둑
《‘새내기의 반란이냐, 1인자의 수성이냐.’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전 3번기에서 ‘괴물’ 한상훈 2단과 ‘쎈돌’ 이세돌 9단이 한 판씩 주고받으며 28일 최종국에서 우승을 가리게 됐다. 한 2단의 결승 1국 완승에 바둑계는 깜짝 놀랐다. 한 판을 이긴 것이기 때문에 아직 두고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한 2단이 바둑 내용에서 보여준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것. 바둑계에선 특히 수읽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 9단에게 수읽기로 맞대결을 펼쳐 이겼다는 점을 높이 사고 있다. 》

한상훈 2단, 이세돌 9단과 LG배 1승1패

27일 2국에서 지긴 했지만 선전했다는 평이다.

▽최저 단, 최단 기간 세계대회 우승 이뤄질까=한 2단은 2006년 12월 입단했다. 프로기사가 된 지 1년 3개월밖에 안됐다. 만약 그가 이번 대회에서 우승한다면 최저 단, 최단 기간 세계대회 우승 기록을 세우게 된다. 기존 최저 단 세계대회 우승 기록은 이세돌 9단이 3단 시절 제5회 LG배에서 이창호 9단을 3-1로 꺾고 우승하며 세웠다. 1년 3개월 만에 세계대회 우승도 값지다. 이창호(1986년 입단) 이세돌(1995년) 박영훈(1999년) 9단도 세계대회 우승에 5∼7년이 걸렸다.

김성룡 9단은 “입단이 늦어 한국기원 연구생에서 퇴출될 것을 걱정할 정도였던 한 2단이 급성장한 것은 그만큼 신예들의 실력이 과거에 비해 막강해졌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백이 편하다=프로기사들 사이에선 덤이 5집 반에서 6집 반으로 오른 뒤에도 여전히 흑이 좋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한때 덤을 7집 반으로 올려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한 2단은 백을 좋아한다. 이번 결승전 1국에서 돌을 선택할 권리가 주어지자 주저하지 않고 백을 잡았다.

한 2단은 이번 LG배 본선 대국에서 모두 백을 들고 이겼다. 결승 1국까지 포함하면 5연승 중. 결승 2국은 흑을 잡고 졌다.

지난해 그는 대회 본선 이상 대국에서 14번 승리했는데 이 중 백을 들고 10승을 거뒀고 흑으론 고작 4승에 그쳤다. 스스로도 “백을 잡으면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다.

동료 기사들은 한 2단이 백을 잡았을 때 승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그의 기풍과 관련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상대방이 둬나가는 데 따라 맞춰 가는 스타일. 이렇게 두다가 상대방의 실수로 결정적인 찬스가 오면 단번에 우세를 확립한다.

김승준 9단은 “한 2단과 같은 안정적인 기풍은 백을 잡으면 더 힘을 발휘한다”며 “대신 승부처에 대한 탁월한 감각과 깊은 수읽기를 갖추지 못하면 주어진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점에서 아무나 시도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상훈의 진지함=한 2단은 LG배 1, 2국에서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으로 임했다. 편안한 캐주얼 옷을 입는 다른 기사들과 비교하면 색다르다. 한 2단은 이처럼 주요 대국에서 꼭 정장을 입는다.

복장보다 실력이 중요하다는 실용적 사고방식이 국내 바둑계의 대세지만 한 2단은 실력만큼이나 바둑에 임하는 태도를 가다듬는 일도 중요하다고 본다. 정장으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그의 진지한 성격과 연관이 있다.

그는 주요 대국을 앞두고는 전화도 거의 받지 않고 연구에 몰두한다. 월간바둑 관계자는“지난해 7월 삼성화재배 본선 2회전 전날 대국 해설을 부탁하기 위해 전화를 했더니 연락이 안 됐다”며 “대국 전날은 연락이 안 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 2단의 스승인 김원 8단은 “스스로 맡겨 놓아도 그날 해야 할 바둑 공부는 절대 미루지 않는다”며 “또래 젊은 기사에게서는 보기 힘든 자기 관리와 절제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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