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세형]“인문학 대중화 가능성 보았다”

  • 입력 2007년 12월 22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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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인문학 최고지도자 과정인 서울대의 ‘아드 폰테스 프로그램(AFP·Ad Fontes Program·아드 폰테스는 라틴어로 ‘원천으로’라는 뜻)’이 18일 성공리에 1기 수료생을 배출했다.

AFP에는 LG 삼성 롯데 국민은행 우리은행 등 국내 유수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급 인사들이 참여했는데도 평균 출석률이 90% 이상이었다.

내년 3월 개강 예정인 2기 과정은 벌써부터 수강 신청이 밀려들고 있다. 2기 과정에 수강 의사를 밝힌 CEO급 인사는 이미 정원인 40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인재로 키우려는 임원을 파견할 테니 꼭 받아 달라는 기업들의 ‘청탁’까지 들어온다고 한다.

일반인과 학생들이 인문학을 외면하는 ‘인문학 위기 시대’에 AFP는 인문학 대중화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 줬다.

서울대 관계자들은 이 같은 성공의 원인으로 철저한 ‘고객 우선주의’와 치밀한 ‘시장조사’를 꼽고 있다.

1기 수강생 모집을 위해 서울대 인문대 교수들은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유명 인사들을 만나 프로그램의 취지와 효과를 설명했다.

바쁜 CEO들이 좀 더 편하게 강의를 듣도록 하기 위해 강의실은 아예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마련했다.

학기 중 이뤄진 경북 안동시와 중국 베이징의 현지답사 때는 3, 4시간 거리를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교수들이 돌아가며 강의를 했다.

충실하고 차별화된 강의를 위해 인문학 대중화에 관심이 많은 젊은 교수 10여 명을 중심으로 기획위원회를 구성해 1년 이상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매달리기도 했다. AFP의 실무 책임자였던 이강재 서울대 중문과 교수는 “인문대 특유의 도도함과 폐쇄성을 버리고 세상에 나와 ‘소비자’와 ‘시장’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니 길이 보였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 인문학계에서는 위기라는 목소리는 높았지만 정작 위기를 벗어나려는 시도는 많지 않았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AFP는 인문학 위기 탈출을 위한 훌륭한 벤치마킹 사례가 됐다. 인문학 대중화에 성공한 제2, 제3의 AFP가 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세형 사회부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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