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의 벽 앞에 무너진 사랑 그렸죠”

  • 입력 2007년 12월 21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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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김진규 씨 문학동네 소설賞 수상작 ‘달을 먹다’ 책으로 나와

습작 한 번 해보지 않은 ‘아줌마’가 장편 공모에 당선됐다. 그것만으로도 화제였다. 지난달 중순 제13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달을 먹다’(문학동네)의 작가 김진규(38) 씨. 기대를 모았던 그 책이 최근 나왔다.

김 씨는 대학(문예창작과도 아니고 한국 외국어대 이란어과) 졸업하던 해에 결혼해 곧바로 아이를 갖고, 그 아이가 중학생이 되기까지 놀이방에서 잠시 아이들을 돌봤던 것 외엔 전업 주부로 살았다. 지난해 가을, 느닷없이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하고 1년 가까이 붙들어 만든 장편이 덜컥 등단작이 됐다.

‘달을 먹다’는 심사위원들에게 “과장기나 포즈로부터 초연한 서술의 품위”(소설가 이승우), “서사의 교향과 다양한 인물의 매력적인 표정이 가슴을 뻐근하게 만드는 느낌”(평론가 서영채), “왕자웨이 감독이 김용의 무협지를 ‘동사서독’이라는 아름다운 무협 로맨스물로 만든 것과 유사한 일”(평론가 신수정) 등 호평을 받은 작품. 월식(月食)을 풀어 쓴 현대적인 제목과 달리 이 이야기는 역사소설이다. 배경은 영·정조 시대. 작가는 “소설 쓰느라 정신이 없어서 무슨 작품이 인기 있는지도 몰랐다”지만, ‘달을 먹다’는 2007년을 뜨겁게 달군 ‘뉴에이지 역사소설’ 붐을 잇게 됐다.

“이해와 오해 사이의 간극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지구가 그림자로 달을 가리듯 나의 가치관과 정서 같은 것들로 다른 사람을 가려버리는 일에 대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의 문제는 오랜 시간에 걸쳐 계속돼 온 문학적 철학적 고민 아닌가요.”

소설에서는 아홉 명의 화자가 등장해 저마다의 목소리로 사랑의 내력을 풀어간다. 그 속에서 무수한 오해가 빚어지고 비극이 벌어진다. 가령 홀아비 최약국은 아내 후인을 지극히 사랑하지만 어렸을 때 부모에게 버림받은 상처로 인해 한순간도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런 남편이 한없이 차갑다고만 느낀 후인은 딸 향이를 버려두고 가출한다. 최약국의 집 앞을 지나다 향이를 보고 여문은 한눈에 사랑에 빠졌지만 어머니의 반대 때문에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되고, 향이는 여문의 아이를 갖고도 말 못하고 괴로워하다 자살을 택한다.

“누구도 자기 속을 내색하지 못하고, 그럼으로써 아무도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일이 흘러갑니다. 나 자신도 그런 일을 겪기도 했고요. 소통의 부재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고 옛 시절을 빌려 왔습니다.”

그렇다고 옛 시절에 대한 고증을 소홀히 한 건 아니다. “박물지를 보는 것 같다”(소설가 박완서 씨)는 평을 받을 만큼 당대의 사물과 기후, 풍습을 묘사하는 데 공을 들였다. ‘조선왕조실록’ ‘조선의 뒷골목풍경’ ‘미쳐야 미친다’ 등 온갖 책과 자료를 쌓아 놓고 공부했다.

“조선 시대는 제약과 규약이 많았던 때이고 후기에 들어서면서 남녀의 차이가 더욱 심해졌어요. 하지 못하는 말과 행동이 많았던 그 시대에 비해 오늘날은 자유로워진 듯하지만, 그렇다고 사람 간의 소통이 그만큼 수월해졌을까요? 그런 지점을 부각시켜 보고 싶어 조선을 배경으로 택한 겁니다.”

일주일에 10권씩 책을 읽을 정도로 지독한 독서가여서 4년 넘게 블로그에 서평을 올렸다고 한다. 그게 그때껏 쓴 글의 전부였다. “당신에겐 입력된 만큼 출력이 필요해. 안 그럼 미칠 거야”라는 남편의 권유에 공감하면서,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지만, 막상 탈고한 작품을 우편으로 부치고 난 뒤엔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눈물을 쏟았다. “당선됐습니다, 축하드려요”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한동안 멍했다가 더럭 겁이 났다고 돌아본다.

문체가 단정하고 꼼꼼하다. “습작 시절 문체 훈련을 위해서 기성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필사했다던데…”라고 질문을 던지자, “그런가요?”라며 눈을 둥그렇게 뜬다. 그러고 보니 책의 띠지에 ‘아줌마의 겁 없는 도전’이라고 적혀 있다. 그 ‘아줌마’는 “장편 세 편 정도 쓸 얘깃거리가 있는데 마음 가다듬고 다시 쓰기 시작할 것”이라고 눈을 빛내며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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