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언어로 사랑하는 법

  • 입력 2007년 12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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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로 사랑하는 법/한희수 지음/407쪽·1만2000원·종려나무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우리는 사랑일까’를 읽노라면 온갖 도표를 동원한 사랑론을 만나게 된다. 현대인의 외로움과 사랑의 실패를 철학 문학 심리학 인류학 등을 동원해 설명을 시도하는 그 책은 소설 형식이지만 잘 준비된 사랑학개론 강의를 듣는 것 같은 지적 만족을 심어 준다.

‘사랑’이란 실례를 통해 미묘하고 섬세한 언어생활의 미학을 흥미진진하게 펼쳐 낸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의 글쓰기를 떠올리게 한다. 이야기를 다루는 서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말과 글을 넘어 느낌, 몸짓, 시간 및 공간, 체계(구조)를 포함하는 광의의 언어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곡해의 드라마를 다양한 이론과 도표를 동원해 해부한다.

우리 언어생활 가운데 실제 말과 글이 차지하는 비중은 9%에 불과하다. 따라서 말과 글로 고백하는 사랑은 9%짜리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국내 주말드라마의 대부분이 그 9%짜리 사랑의 실패를 주제로 한다는 점이다.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에게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냐?’고 열심히 설득한다. 그러면 여자 주인공은 ‘사랑한다’는 9%짜리 말을 100%로 믿고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한다. 대부분의 드라마 결말은 비슷하다. 사랑하던 남자는 돈 많은, 혹은 나이 어린 여자를 만나 또 다른 ‘사랑’을 말하고, 아이와 함께 버림받은 여자 주인공은 저주를 퍼붓거나 화려하게 복수를 한다. 9%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사랑은 이 정도였던 것이다.”

따라서 사랑은 9%를 지렛대 삼아 나머지 91%를 완성하는 것이 돼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쉽게 ‘늑대’의 거짓말만 욕할 뿐 9% 남자의 말만 믿고 나머지 91%를 자신의 환상으로 채웠다가 실패한 뒤 모든 책임을 남자에게 뒤집어씌우는 ‘여우’의 잘못은 따지지 않는다.

언행이 불일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에 ‘이야기’는 더욱 중요하다. 그것은 단순히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부재하거나 불가능한 것을 현존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죽음과 삶, 성욕과 애정이 겹쳐 있기에 오히려 전혀 새로운 삶의 차원을 열어 준다.

문제는 이야기든 사랑이든 9%짜리를 100% 순도로 바꿔 치려는 욕망만 계속 확대 재생산된다는 점이다. 제인 캠피언 감독의 영화 ‘피아노’ 속 ‘벙어리 사랑’과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비터문’ 속 ‘외설의 사랑’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저자가 말하려는 것을 헤아리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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