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바보야, 선거는 ‘감성’이야…‘감성의 정치학’

  • 입력 2007년 11월 24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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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의 정치학/드루 웨스턴 지음·뉴스위크 한국판 옮김/394쪽·2만5000원·뉴스위크 한국판

올해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의 원제는 ‘The Political Brain’, 즉 정치적 두뇌다. 투표를 비롯한 정치 행위를 할 때 두뇌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신경과학 심리학 정치학 등 여러 측면에서 분석했다.

번역본의 제목은 그 답이다. 유권자의 투표나 후보를 보는 눈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대선을 앞둔 우리 현실에서 ‘그래서야 되겠느냐’ 싶지만, 저자는 미국 대선과 총선에서 나온 후보 광고나 토론, 연설, 투표 등과 관련된 수십 개의 연구 사례를 제시하며 “유권자들이 합리적으로 어떤 결론에 이르리라는 생각으로 선거 전략을 짜면 그 후보는 백전백패”라고 단언한다.

저자는 정치적 두뇌가 작동하는 동안 뇌신경회로의 움직임을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으로 들여다보면서 ‘감성’의 힘을 확신한다. 그가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열렬한 지지자 10명씩을 상대로 한 실험을 보자. 공화당 지지자들은 민주당 후보가 모순된 말을 했을 때 모순임을 곧장 알아차리는 반면 공화당 후보가 그런 모순을 범했을 때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민주당 지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현상은 뇌신경회로의 흐름으로 명확하게 드러났다. 지지하는 후보의 모순을 봤을 때는 부정적 감정과 관련된 신경회로가 꺼졌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를 긍정적으로 강화하려는 신경회로가 작동했다. 이는 마약 중독자의 회로와 상당 부분 겹쳤다. 후보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열광하는 현상이 곧 정치적 중독인 것이다. 이 결과에 따르면 자신을 반대하는 유권자들을 끌어오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해봐야 이들이 마음을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간에서 마음을 바꿀 가능성이 있는 부동층에 적극 다가서야 한다는 것이다.

2000년 앨 고어 민주당 후보와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가 고령자 의료 보장 제도를 둘러싸고 실시한 토론(사진)도 감성의 힘을 보여 주는 사례다. 고어는 복잡한 숫자를 제시하며 똑 부러지게 대답했지만 부시의 한마디에 졌다. 고어의 토론은 이성적이었으나, 유권자들은 ‘(고어는)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 냉담한 정책 전문가’라는 부시의 반격에 더 솔깃했다. 부시는 “고어에게 사람들은 통계 수치에 불과하다”고 반격했다.

저자는 빌 클린턴이 감성 지능이 예외적으로 높은 대통령 중 한 명이었다고 말한다. 클린턴은 선거 도중 혼외정사 등 성 추문 보도가 떠돌았으나 부인 힐러리와 함께 CBS 방송에 출연해 “대다수 미국인은 ‘우리’가 더할 나위 없이 솔직했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라는 단어로 성 추문은 부부의 문제이지 자신과 미국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호소했다. 성 추문은 잦아들었다.

그렇다면 완벽하게 이성적이고 지적인 유권자는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이들은 열정의 결핍, 위기의식의 결여 등으로 대체로 수동적이고 무기력하다”고 말했다. 이성적인 유권자로만 당선의 문을 열기에는 부족한 게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쓴 이유가 민주당 지지자로서 민주당이 관념의 시장에서 도박을 하는 바람에 감성의 시장에서 경쟁하는 공화당에 지는 게 안타깝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지지자로서 민주당이 공화당을 이길 수 있는 온갖 전술을 마키아벨리 식으로 냉혹하게 제안하고 있다. 감성적 표심을 얻기 위해 ‘감동적 이야기를 만들어라’ ‘어정쩡한 태도를 버려라’ ‘후보의 외적 인상이 승리를 좌우한다’ 등.

저자의 뜻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선거전에서 유권자의 이율배반적 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 ‘과학적’ 가이드가 된다. 유권자들도 자기 선택이 감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을 뒤돌아볼 수 있다. 저자의 논지를 더 확장해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이성이나 논리가 아니라 감정의 지배를 얼마나 많이 받고 있는가를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다.

허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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