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M세대의 감성…미니멀리즘

  • 입력 2007년 11월 23일 03시 04분


코멘트
《최근 ‘텔미영길’이란 제목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등장했다. 넥타이를 맨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통령후보가 여성 5인조 그룹 ‘원더걸스’의 히트곡 ‘텔 미’에 맞춰 손가락을 찌르는 장면이 담겨 있다. 9월 13일 발표된 ‘텔미’가 두 달 만에 TV, 라디오 방송 횟수 1164회(‘에어모니터’ 집계)를 기록하는 등 인기몰이하는 가운데 대선 후보까지 합류한 이유는 무엇일까. ‘텔 미’를 흥얼거리는 ‘M(미니멀리즘)세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Simple is Beautiful

○ ‘살릴 것’만 살리는 M세대

음악평론가 성우진 씨는 ‘텔 미’의 인기 비결로 단순함을 꼽았다. 그는 “핵심 부분만 반복해 강조하기 때문에 단순함의 극치를 보여 준다”며 “기승전결을 다 들을 시간이 없는 인터넷 시대에 맞는 곡”이라고 말했다.

‘텔 미’는 웅장한 ‘대곡’ 발라드나 서사 구조를 갖는 화려한 록 발라드곡, ‘소몰이 창법’으로 알려진 미디엄 템포 발라드 등 뚜렷한 클라이맥스가 있던 기존 가요와는 다르다. 특정 부분의 반복이나 ‘원 코드’ 형식의 화성 구조로 단순하기 때문에 누구나 흥얼거리게 만든다.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 양파의 ‘사랑 그게 뭔데’, 휘성의 ‘사랑은 맛있다’ 등 유명 클래식 멜로디를 단순 반복하는 ‘클래식 샘플링’ 가요도 마찬가지다.

작곡가 박근태 씨는 “최근 히트곡은 감동을 주기보다 단순함에 중독되게 한다”면서 “이것이 하나의 ‘현상’으로 퍼져 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최소한 것이 최고’라는 ‘미니멀리즘’은 화려한 치장을 없애고 기본적인 것만 남기자는 사조다. 무채색 위주의 패션이나 미술 등 시각 예술 분야에서 출발해 현재는 대중문화 전반에 뿌리내린 상태. 고도화된 사회 속에서 미니멀리즘을 추종하는 세대, 이른바 ‘M세대’는 10, 20대 젊은이들이 주축을 이뤄 단순한 문화 콘텐츠에 열광하는 양상을 보인다.

현재 미니멀리즘 문화가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패션이다. 미래주의를 뜻하는 ‘퓨처리즘’과 함께 지난해 말 각종 패션쇼에서 올해 유행 경향으로 꼽힌 코드는 바로 미니멀리즘 패션이었다. 검은색과 흰색, 회색 등 무채색 계열의 색깔이나 디자인 등 장식을 최소화한 형태로 재킷부터 바지, 신발, 심지어 속옷까지 일년 내내 유행했다.

최근에는 코트나 부츠, ‘크롭트 재킷’(허리선 위의 짧은 재킷) 등 겨울 의상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내년 상반기 패션에서도 유행할 것으로 보인다. 동덕여대 의상디자인학과 김혜경 교수는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패션은 차분하고 단순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며 “시대에 걸맞은 ‘미니멀리즘+α’의 형태로 변모해 나갈 것”이라고 예견했다.

○ 단순함이 무기

패션만큼 유행에 민감한 디지털 기기 역시 마찬가지다. MP3플레이어, 휴대용동영상플레이어(PMP), 휴대전화 등의 성능은 하루가 다르게 고도화되지만 디자인은 단순해지고 있는 추세. ‘애플’의 MP3플레이어 ‘아이팟’의 히트 이후 LG사이언 휴대전화 ‘프라다폰’이나 ‘애플’의 ‘아이폰’, ‘아이팟 터치’ 등 버튼을 최소화한 상품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검은색 터치스크린을 강조한 삼성전자 MP3플레이어 ‘옙 P2’는 발매 한 달 만에 3만 대가 팔려나가 삼성전자 MP3플레이어 상품 중 최단 시간에 가장 많이 팔린 상품으로 기록됐다. 삼성전자 AV 디자인실 김한 책임은 “필요한 것만 강조하고 그 외의 것은 과감히 배제하는 미니멀리즘 디자인이 신기술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말했다.

광고계 역시 마찬가지. 과거 “제작비가 얼마 들었나” “어떤 스타가 출연했나” 등이 이슈가 됐다면 현재는 “얼마나 단순하고 명확하냐”가 관건이다. 아무런 움직임 없이 여자아이가 미소 짓고 끝나는 현대그룹 기업 광고, 흰 옷 차림의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들고 있는 것이 전부인 ‘SK텔레콤’의 ‘T’ 시리즈, 흰 무대에 차와 일반인 모델 두 명 만 내세운 현대자동차 ‘베라크루즈’류의 광고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광고대행사 ISMG의 남궁령 상무는 “시끄러운 세상에선 침묵이 오히려 무기가 되는 분위기”라며 “광고가 단순해질수록 메시지는 뚜렷해지고 이미지는 고급스러워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 ‘선택의 압박’에서 자유롭고 싶은 사람들

전문가들은 미니멀리즘 열풍이 사회적 환경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숨막힐 듯 복잡한 세상에서 M세대는 단순함을 통해 숨 쉴 돌파구를 찾는다는 것이다. 서강대 사회학과 전상진 교수는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자신에게 알맞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하나의 ‘일’처럼 여겨질 정도로 힘들다”며 “선택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마음에 되도록 간단하고 명료한 것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니멀리즘을 하나의 붐으로 확대한 주체는 10, 20대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미니멀리즘 문화를 인터넷을 통해 소개하고 후속물을 만들어 함께 공유하면서 미니멀리즘 문화를 만들고 소비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의 복잡한 문화에서 더는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복잡한 문화에 대해 실망하고 ‘복잡해 봤자 별것 없다는’ 식으로 합리화하고 있다”며 “미니멀리즘을 가식 없고 순수한 것이라 치켜세우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니멀리즘의 배경에는 복잡한 디지털문화가 숨어 있다. 수많은 ‘텔 미’ 손수제작물(UCC) 패러디물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고 미니멀리즘 패션 관련 인터넷 동호회들이 유행 아이템을 퍼뜨리고 있다. 미니멀리즘 열풍의 근원지는 인터넷이고 주체는 누리꾼이다. 과거의 단순 소박미와는 완연히 다르다.

전 교수는 “미니멀리즘 열풍의 본질은 결국 재미”라며 “미니멀리즘에 식상하거나 익숙해지면 이들은 다시 복잡한 문화를 재미있다고 여겨 새 유행을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