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1세-에디트 피아프 전기영화 신들린 연기 화제

  • 입력 2007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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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개봉하는 ‘라비앙 로즈(La vie en rose·장밋빛 인생)’는 ‘프랑스의 목소리’로 불리는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전기 영화다. 같은 날 개봉하는 ‘골든 에이지’는 영국 역사의 ‘황금시대’를 연 여왕 엘리자베스 1세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대극이다. 피아프는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가수,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군주다.

자국에서처럼 관객들의 흥미를 끌기는 어렵겠지만 실존 인물의 삶 그리고 그 인물들을 외모부터 마음속까지 복제해 낸 두 여배우 마리옹 코티야르(라비앙 로즈)와 케이트 블란쳇(골든 에이지)의 연기에 초점을 맞추면 한층 흥미롭다.

○ 영국이 존경한 여자

신교와 구교가 대립하던 16세기 말, 신교도인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구교 반체제파의 위협에 단호하게 맞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여왕이었다. 스페인 무적함대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여전사이기도 했다. 일생 동안 결혼을 하지 않아 ‘버진 퀸’으로 불렸던 그는 각국 왕들의 청혼을 외교에 이용할 만큼 영리했지만 거울을 보며 ‘주름은 왜 생길까’ 고민하고 사랑하는 남자 때문에 절규하며 몸부림치는 보통 여자였다.

‘골든 에이지’는 인도 출신 셰카르 카푸르 감독의 엘리자베스 3부작 중 2편. 1998년의 1편 ‘엘리자베스’로 세계적 배우로 발돋움한 호주 출신의 케이트 블란쳇이 다시 돌아왔다. 블란쳇은 위엄과 품위가 뚝뚝 묻어나는 중저음의 단호한 말투로 여왕 본연의 모습을 보여 주다가 때로는 거친 행동으로 또는 얼빠진 표정으로 고뇌를 적절히 가미한다. 블란쳇은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왕이 다면적인 모습을 가졌고 그 안에서 갈등하고 흔들리는 인간적인 캐릭터라는 것을 부각하려 했다”고 말했다.

눈을 즐겁게 하는 영화다. 16세기 ‘패셔니스타’였던 엘리자베스 1세의 스타일을 따른 블란쳇의 화려한 드레스는 그의 심리까지 반영한다. 신하들과의 회의 때는 강렬한 붉은색, 기도를 위해 성당을 찾을 때는 순백의 우아함이다. 목둘레를 감싸는 주름칼라인 러프 등 드레스의 디테일과 형형색색 보석에도 눈길이 간다. 주름을 감추려고 두껍게 화장했다는 여왕처럼 얼굴을 새하얗게 만들고, 당시 유행인 넓은 이마를 위해 눈썹과 헤어라인을 밀어내고 가발을 쓴 블란쳇은 초상화 속의 여왕과 똑같다.

호화로운 비주얼에 가려진 드라마는 전편보다 실망스럽다. ‘잘 차려입은 16세기 인형들’ 같다는 평까지 나온다. 인도 감독과 호주 배우, 영국 제작사 ‘워킹타이틀’ 등 영연방 패밀리가 모여 만든 영화, 여왕을 여신처럼 비추는 카메라가 때론 부담스럽다. 12세 이상.

○ 프랑스가 사랑한 여자

147cm의 키, 가느다란 눈썹에 붉은 입술. 에디트 피아프는 열정적 여인이었다.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다 최고의 가수가 됐다. 툭하면 소리를 질러대며 멋대로 행동했지만 ‘목숨을 걸지 않으면 가수의 자격이 없다’고 믿는 ‘프로’였다. 죽음보다 외로움을 두려워해 수많은 염문을 뿌렸지만 사랑은 단 한 번뿐. 술과 마약, 스캔들과 사고로 얼룩진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그는 인터뷰하러 온 기자에게 말한다. “나, 제대로 살았는 걸요.”

프랑스인들이 너무 잘 알고 있기에 피아프를 연기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코티야르는 앞머리를 밀고 이마를 넓혀 피아프의 짱구 이마를 만들었다. 허리를 구부리고 엉거주춤 걷는 걸음, 고개를 숙이며 눈을 크게 뜨는 표정, 반항하듯 내지르는 말투도 연습했다. 그가 가장 힘들어했던 것은 노래하는 장면. 피아프의 노래에 어색하지 않게 입을 맞추기 위해 특유의 섬세한 손동작과 함께 노래할 때 호흡하는 부분과 악센트를 주는 부분까지 외워서 연기했다. 그 결과 영화에선 마치 코티야르가 노래하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러셀 크로와 함께 ‘어느 멋진 순간’에 나왔던 코티야르는 이 영화가 올해 베를린 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면서 ‘신들린 연기’라는 극찬을 받았다. 프랑스에선 500만 명의 관객이 들었다. 그러나 생략하고 지나가는 부분이 많고 시점(時點)이 계속 교차해 피아프를 잘 모르는 관객들은 이해하기 힘들다.

영화 제목과 같은 ‘장밋빛 인생’이나 ‘사랑의 찬가’ 등의 노래는 귀를 즐겁게 한다. 마지막 장면, 최후의 무대에 선 피아프가 명곡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를 부르는 모습과 죽음을 앞둔 피아프의 얼굴 클로즈업이 교차될 때 코티야르의 표정 연기와 노래 가사를 주목할 것. “후회하지 않아 내겐 후회 없으리. 행복했던 순간도 다 갔고 고단한 시간도 지난 일… 온 몸으로 살았던 내 인생도 잊혀져 가고 이젠 다 지난 일일 뿐….” 12세 이상.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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