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보면 더 재미있는 미술]누드화 벗겨보면 기하학이…

  • 입력 2007년 11월 1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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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와 조화, 균형감’이라는 삼박자를 모두 갖춘 벨베데레의 아폴론은 고대 그리스에서 만든 아폴론상 중 최고 걸작으로 불린다. 상체와 하체, 머리와 목부터 허리까지의 길이가 황금비율(1 대 1.618)을 이룬다. 그리스인들은 이런 방식으로 신체의 비율을 고려해 이상적인 몸매를 만들어 냈다.
‘미와 조화, 균형감’이라는 삼박자를 모두 갖춘 벨베데레의 아폴론은 고대 그리스에서 만든 아폴론상 중 최고 걸작으로 불린다. 상체와 하체, 머리와 목부터 허리까지의 길이가 황금비율(1 대 1.618)을 이룬다. 그리스인들은 이런 방식으로 신체의 비율을 고려해 이상적인 몸매를 만들어 냈다.
19세기 신고전주의 화가 앵그르의 작품 ‘샘’. 자연스럽게만 보이는 그림 속 여인의 도발적 자세는 해부학적으로는 비정상이다.
19세기 신고전주의 화가 앵그르의 작품 ‘샘’. 자연스럽게만 보이는 그림 속 여인의 도발적 자세는 해부학적으로는 비정상이다.
《미술전람회를 가면 그냥 지나치는 작품이 적지 않다. 미술계 거장의 작품이라고 하니 눈여겨보긴 하지만 그림이 그려진 배경을 잘 모르는 탓에 보는 둥 마는 둥 한다. 본보 플러스 과학면은 세기적 명화를 과학의 눈으로 새롭게 읽어보는 코너를 7회에 걸쳐 소개한다. 과학자와 미술평론가가 모여 미술관에서 명화를 감상할 때 꼭 기억해 둘 만한 핵심 관람 포인트를 제시한다. 첫 회 주제는 ‘누드’로 잡았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정민석 아주대 해부학교실 교수, 이광연 한서대 수학과 교수와 함께 대표적인 누드 작품 2개를 통해 누드의 관람 포인트를 짚어본다.》

【포인트 1】그림 속의 황금비율을 찾아라

미술에 문외한일지라도 가장 편하게 ‘한마디’ 할 수 있는 작품 소재는 몸이다. 하지만 예술가들이 누드를 주제로 작품을 만든 것은 그와 다른 이유다.

이명옥=“누드는 원래 완벽한 비례와 균형, 대칭의 산물이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인은 남성의 몸을 가장 완벽하고 아름답다고 인식했다. 1490년 로마에서 발견된 벨베데레의 아폴론상은 이상적인 남성 누드다. 그리스인들은 이상적인 몸을 묘사하기 위해 키를 기준으로 몸의 다른 부위를 일정한 비례로 만들었다. 카논(‘자’라는 뜻)이라는 이 법칙에 따르면 키가 머리보다 7배(훗날 8배로 바뀜) 길 경우가 가장 아름답다고 봤다.”

과연 당시 예술가들이 수학자나 알 만한 ‘비례’나 ‘법칙’이란 걸 얼마나 의식했을까.

이광연=“가장 이상적인 아폴론상이 만들어졌을 즈음인 기원전 550∼300년은 유클리드 기하학이 완성된 시기다. 벨베데레의 아폴론상을 보면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황금비율이 쓰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어깨 양끝과 남성의 성기를 이으면 역이등변삼각형을 이룬다. 아름다움마저 수학 규칙을 통해 표현하려는 풍토가 반영된 것이다.”

【포인트 2】S라인에 현혹되지 말라

미술평론가는 요즘 유행하는 ‘S라인’의 기원을 과거 명화에서 찾아낸다. 육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시대를 관통하는 걸까.

이명옥=“아름다운 몸을 표현하려는 노력은 유럽 르네상스를 거쳐 19세기까지 이어진다. 16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사람 몸을 직접 해부해 작품으로 남겼다. 특히 19세기 화가 앵그르가 그린 ‘샘’의 여성 누드는 이상적 미와 현실감이 조화된 몸으로 꼽힌다. 한 발은 살짝 구부린 채 엉덩이는 치켜세우고 허리는 요염하게 비틀어 성적 매력을 발산한다. 요즘 젊은 여성 사이에서 유행하는 ‘S라인’ 몸매가 한껏 드러나는 자세다.”

과학의 눈으로 볼 때 상당수의 누드화 모델은 해부학적으로 ‘기형’으로 보인다.

정민석=“샘에 등장하는 여성(요정)의 몸은 현실감도 높지만 해부학적 오류가 있다. 그림 속 여인은 오른발을 살짝 들고 있는데, 이럴 경우 골반 오른쪽이 올라가야 몸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오른쪽 골반이 내려간 것은 비정상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와 달리 해부를 했다는 기록이 없는 라파엘로의 경우도 그렇다. 라파엘로가 그린 ‘삼미신’의 한 여신은 흉쇄유돌근이 나타나지 않고 다리 무릎 뒤에 있어야 할 오금이 보이지 않는다. 화가는 아마도 좀 더 ‘예술가의 시각으로’ 완벽한 미를 추구하기 위해 사실대로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포인트 3】소품 하나에도 과학이 있다

명화에는 뜻밖에도 당시의 ‘첨단’ 과학지식이 반영돼 나타나기도 한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다. 작품 ‘샘’에 등장하는 여인 어깨에 얹은 물동이에서 떨어지는 물은 평행선을 그린다. 그러나 떨어진 물이 바닥쯤 왔을 때 평행선은 사라진다.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이광연=“‘샘’이 그려진 1850년대 중반은 비(非)유클리드 기하학이 처음 제시된 때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평행선은 절대 서로 마주치지 않는 직선이 아니다. 사회 변화에 민감한 화가였던 앵그르는 과거 2000년간 절대 서로 만나지 않는다는 평행선의 개념이 흔들리고 있음을 작품에 반영했을 수 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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