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학이 부활한다… 종합학문 부흥 조짐

  • 입력 2007년 11월 7일 03시 10분


코멘트
중고교 교과과정에서 단순 암기 과목의 대명사로 꼽혔던 지리학이 세계화 시대를 맞아 부흥의 나래를 펴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이 발간하는 학술계간지 ‘정신문화연구’ 가을호는 ‘한국의 인문지리’를 특집기획으로 집중 조명했다. 경제학, 도시연구, 역사·문화연구, 국경선 문제, 지도연구 등 여러 분과학문과 결합한 지리학의 다양한 발전상을 보여 준다.

제국주의 시대 공간의 확장이란 관점에서 각광받던 지리학은 지구촌 시대를 맞으면서 그렇게 확보된 공간의 깊이로 파고들고 있다. 지구 전체를 대상 범위로 지구 환경의 실태와 변화에 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지리정보시스템(GIS)은 환경, 도시문제를 풀어 가는 분석 도구로 각광받고 있다. 세계화의 대칭점에서 이뤄지는 지역화는 지역적 특성에 기초한 ‘장소 마케팅’의 토대로서 지리학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 풍수지리서나 지도역사서로 집중되던 지리학 관련 저서도 다원화하고 있다. 1998년 펴낸 뒤 18쇄를 찍은 ‘지리이야기’로 대중화의 물꼬를 튼 권동희 동국대 교수는 지난해 이 책의 개정판에 이어 올해 ‘지형도 읽기’ 개정판과 전문 이론서로서 ‘토양지리학’(한울아카데미)을 동시에 펴내며 탄탄한 독자층을 확인했다.

영국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의 ‘희망의 공간’(한울아카데미)은 인접 사회과학의 방법론을 차용하기 바빴던 지리학이 거꾸로 사회학 건축학 미학 등에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음을 보여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 정치외교학자 8명이 공역한 미국 지리학자 콜린 플린트의 ‘지정학이란 무엇인가’(길) 역시 19세기 제국주의 학문으로서의 지정학을 창조적인 21세기 ‘공간의 정치학’으로 재탄생시켰다는 찬사를 받았다.

최근에도 지리학적 상상력이 빚어낸 책들이 이어졌다. 엄밀성과 과학성을 표방한 지도의 역사에서 이념투쟁을 읽어내는 ‘지도와 권력’(알마)이나 현재의 중국을 형성하는 지리공간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발견되고 상징화됐는가를 추적한 ‘중국 지리 오디세이’(일빛) 등이다.

이런 흐름 속에 지난주 출간된 미국의 원로 지리학자 하름 데 블레이의 ‘분노의 지리학’(천지인)은 사실상 지리학 부흥 선언서와 같다. 이 책은 지리학적 무지가 세계화 시대 각종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면서 지리학을 필수교양 과목으로 삼을 것을 역설한다.

이 같은 지리학 부흥의 흐름을 종합적이고 거시적인 학문 자체의 성격에서 찾는 분석이 많다. ‘한국의 인문지리’ 필자로 참여한 정치영 한중연 교수는 “지리학은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아울러야 하는 속성상 ‘관심 분야는 넓지만 지식은 얇다’는 비판을 받아 왔는데 이런 약점이 학제 간 연구가 강조되는 21세기에는 강점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동희 교수도 “종합 학문으로 지역학이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를 종합하는 지리학 본연의 매력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