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워게임과 세상살이, 무엇이 다른가요

  • 입력 2007년 11월 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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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구 기자
이훈구 기자
◇셋을 위한 왈츠/윤이형 지음/416쪽·1만 원·문학과지성사

“찬란하던 그해에, 우리는 모두 이 땅의 자랑스러운 모험가였다. 삶은 그대로 전쟁이었고 전투는 우리의 일상이었다. 진보와 향상은 우리를 숨 쉬게 하는 이유였고 속도와 경쟁은 우리 삶에 부어지는 윤활유였다.”(‘피의 일요일’ 중에서)

이곳은 하나의 세계다. 온라인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피의 일요일’은 이 게임 속 캐릭터다. 많은 영화와 만화에서 등장했을 인간처럼 되고 싶어 하는 캐릭터들. 그렇지만 문학에선 금기시됐던 이 소재를 젊은 작가 윤이형(31·사진) 씨는 가뿐하게 끌어온다. 그런데 비현실적인 얘기가 아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현대인의 초상과 겹친다. 가령 이런 대목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 그건 늘 일어나는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죽여야 했다.’ ‘저 육지의 인간들은 나고 자라고 싸우고 헐뜯고 타락하고 지지고 볶다가, 마침내 쪼글쪼글하게 노화한 몸으로 온몸의 구멍에서 분비물을 흘리며 치욕적인 모습으로 죽는다.’

소설가 이제하(70) 씨의 딸로 등단할 때부터 화제가 됐던 윤이형(본명 이슬) 씨. 2년여에 발표한 작품이 12편에 이른다. 대단한 기세다.

“지금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로 작가는 문학이 낯설다고 하지만, 문단은 윤 씨의 글쓰기를 각별하게 주목했다. 소설 작법을 잘 모른다는 이 작가의 작품은 그래서 더욱 개성적인지도 모른다. ‘피의 일요일’도 그렇고, ‘판도라의 여름’에서는 마음을 현상할 수 있는 ‘판도라스 박스’를 개발한 여성이 나온다. 이 기이한 상상력에 대해 평론가 우찬제 씨는 “접속 시대의 풍경과 질료를 십분 활용하되, 그것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심연을 탐문하려는 소중한 눈을 지녔다”고 평한다. 실제로 윤 씨 소설의 이상한 상징들은 단절과 고독, 정체성에 대한 고민 같은 문제와 맞닿는다.

“숨이 턱턱 막히는 답답함에 글을 쓰게 됐다”고 창작의 계기를 밝히는 윤 씨. 삶의 근원적 불안에 시달리는 것 외에도 그는 “열심히 살았는데도 우리 인생은 왜 이럴까”라고 회의해야 했던, 외환위기에 ‘제대로 걸린’ 세대의 고민도 함께 감당해야 했다. 이런 고통을 작가는 등단작 ‘검은 불가사리’에서 별 모양의 불가사리가 눈 속에 파고드는 육체적 고통에 비유한다.

표제작 ‘셋을 위한 왈츠’는 불행한 가족사를 다룬 작품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고로 잃은 주인공은 성장해서도 ‘엄마-아빠-자식’이라는 ‘셋’의 구성에 극도로 두려움을 느끼고 가정을 이루기를 거부한다. 실제로 작가와 아버지의 사이가 편치 않다는 얘기가 들리기도 했다. “그보다는 온전한 하나의 세계에 속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고, 저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은 것과 밥벌이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갈등해 왔으니까….”

그는 “요즘은 아버지께 자주 전화도 드리고 찾아뵙기도 한다”며 “작가가 되니 아버지를 얼추 이해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가족의 매듭을 풀어가기 한참 전에 그는 ‘이제하의 딸’이라는 접두어를 벗어던지고, 그의 이름처럼 ‘다른 모습(異形)’으로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작가가 됐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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