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과 싸우며 9년간 32권… “비움의 길이죠”

  • 입력 2007년 10월 2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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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올해도 어김없이 3권의 학술서를 펴냈다. 서울대출판부에서 나온 ‘불교의 유교경전 해석’과 ‘불교의 주역 노장 해석’에 이어 지난주 출간된 ‘조선유학의 주역사상’(예문서원)까지.

앞의 두 권은 명나라 말기 4대 고승으로 꼽히는 감산(1546∼1623)과 지욱(1599∼1655)이 펴낸 유교와 도교경전에 대한 주석서를 분석한 책이다. 두 사람은 유불선 통합의 관점에서 유교와 도교 경전을 체계적으로 주석한 학승이다. ‘조선유학의 주역사상’은 조선시대 유교경전 주석서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 압도적 관심의 대상이었던 주역에 대한 조선 초 권근과 조선 중기 성이심, 그리고 조선 후기 정약용 등 3명의 독창적 풀이를 비교분석한 연구서다.

유불선 사상에 대한 통합적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그러나 금장태(63)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1999년 이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이런 연구서를 3편 이상씩 펴냈다. 금 교수가 지금까지 펴낸 47권의 단독저술 중 32권(70%)이 1999년 이후 9년간 쓴 것이다. 이런 정력적 저술활동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2차수술 포기하고 연구에만 전념

금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던 기자는 깜짝 놀랐다. 유불선 관련 한문 서책으로 가득할 줄 알았던 연구실 벽이 텅 비어 있었다. 창가에 자리 잡은 업무용 책상 외에 별도의 집필용 책상과 바로 그 옆에 50여 권의 책이 꽂힌 작은 책장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저도 책 욕심이 대단했죠. 연구실 가득 쌓아 놨는데 언제부터인가 가슴이 답답해졌어요. 다 읽지도 않을 거면서 그렇게 쌓아 두기만 하면 뭐하느냐는 자책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번에 나눠서 학교도서관에 기증했어요. 필요하면 도서관에 가서 빌려 읽습니다.”

그랬다. 그의 왕성한 집필 뒤에는 이 같은 ‘버림의 미학’이 숨어 있었다. 세상에 차곡차곡 책을 내놓을 때마다 그는 자신의 연구실을 텅 비워 냈던 것이다. 그것은 시간과 한판 싸움을 펼치고 있는 이 노학자가 터득한 지혜이기도 했다.

그는 머릿속에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간다. 1994년 안식년을 맞아 건강검진을 하다 발견된 뇌종양. 코 내시경 수술을 통해 일부를 제거했지만 그 후유증으로 한동안 연구생활을 접어야 했다. 의사들은 종양이 너무 커서 두개골을 절개하는 2차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다 뇌손상이라도 입으면 평생에 걸친 공부가 도로 아미타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수술을 포기했다. 생명보다 학문을 택한 것이다. 그때부터 친구들과의 만남은 물론 학회 참석도 포기하고 연구실에 칩거하며 저술활동에 주력해 왔던 것이다.

“학문 정리할 때까지 시간 있었으면”

“저술이 많은 것은 그만큼 질적으로 떨어진다는 반증이니 부끄러울 뿐입니다. 저는 다만 앞으로 독자적 이론을 내놓을 후배들이 디디고 올라설 수 있게 지금까지 연구 성과를 정리해 내놓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의 저술이 전공인 한국유교를 넘어서 도교와 불교, 서학(천주교)까지 아우르는 것도 우리 학계의 사각지대를 매워 보겠다는 열정의 소산이었다. 그는 자신의 저술에 대해 진짜 이론을 펼칠 후학들을 위한 디딤돌 수준밖에 안 된다고 평가했지만 학계에선 2001년 제1회 유교학술상과 2002년 제2회 다산학술상 대상을 수여하며 그의 분투를 격려했다.

금 교수는 지금도 금쪽같은 시간을 새로운 책 집필에 모두 쏟아 붓고 있다. 지금까지 다루지 않았던 조선 양명학에 대한 연구서다. 뇌종양이 커지면서 시력이 나빠진 데다 병치레도 잦아졌지만 집필용 책상을 떠나지 않고 있다.

“글쎄요 이놈이 얼마나 버텨줄 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정년까지는 제 학문을 정리해 놓고 떠나고 싶습니다. 내년이 마지막이 될 것 같은데 지금까지 손을 못 댔던 양명학 분야 연구를 정리해 내놓고 가려고 합니다.”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이렇게 말하는 그의 집필용 책상에는 대낮에도 환하게 켜진 스탠드 아래 조선양명학의 태두로 꼽히는 하곡 정제두의 저서들이 펼쳐져 있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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