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모-함석헌 선생 제자들 힘합쳐 ‘씨알재단’ 창립

  • 입력 2007년 10월 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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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세계는) 어쩔 수 없이 유기적인 사회, 전체 사회가 돼서 미워도 고와도 한데 살 수밖에 없게 되었고, 그렇지 못하면 전체가 멸망하게 돼 있다.”(함석헌·1901∼1989)

‘한(韓·큰 하나)’의 철학, ‘씨알’의 철학으로 잘 알려진 함석헌 선생은 21세기 세계화의 시대를 예견이라도 한 듯 이렇게 말했다. 한국화된 기독교 신앙에 입각해 동양과 서양, 이성과 영성, 자연과 종교 역사를 아우르는 그의 통섭철학과 통합적 세계관이 새삼 주목받는 이유다.

함 선생보다는 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사상과 철학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인물이 다석 유영모(多夕 柳永模·1890∼1981). 그는 평양 오산학교의 설립자인 남강 이승훈의 제자였지만 기독교를 남강에게 전파했던 인물이다. 예수를 스승으로 모셨던 다석은 “예수도 씨요, 나도 씨다. 예수가 처음 익은 열매요, 나도 익은 열매가 되어야 한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고 나를 믿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거듭남을 경험한 나, ‘얼 나’ ‘참 나’가 바로 한울님이요, 예수라는 그의 독특한 신앙관은 서구적 기독교를 한국적 유·불·도(儒佛道)와 결합해 만들어 낸 주체적 신앙고백이다.

나와 너를 구분하지 않는 일원적 세계관과 나를 ‘한울’ ‘하나님’으로 보는 자존적 인간관이 역사로부터 버림받았던 민초들을 주인으로 끌어올리는 ‘씨알’ 사상을 배태했다. 또 세계평화주의와 민주주의, 생명사상의 원류가 된다. 두 사람의 신학은 세계화 시대에 분쟁과 테러, 살육의 원인으로 부상하는 종교전쟁을 극복할 한국적 종교다원주의 사상의 모태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로서 1960년대까지 한길을 걸었지만 다석이 영성과 사유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은 반면 함 선생이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어 실천과 참여의 영역으로 건너뛰면서 결별하게 된다.

다석이 세상을 뜬 지 26년, 함 선생이 타계한 지 18년. 이들이 다시 손을 잡는다. ‘다석학회’와 ‘씨알사상연구회’로 갈라졌던 제자들은 5일 서울 중구 장충동 우리함께빌딩 2층 강당에서 ‘씨알 재단’(www.crlife.org) 창립식을 갖고 두 사람의 사상과 철학을 재조명하고 세계화하는 데 앞장설 예정이다. 재단 창립은 내년 서울대에서 열리는 세계철학대회에서 한국의 대표적 사상가로 다석과 함 선생의 생애와 철학을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된 게 계기가 됐다.

재단에는 두 사람의 뜻을 기리는 종교계 학계 시민사회의 쟁쟁한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사장은 유미특허법인 김원호 대표가 맡았고 씨ㅱ사상연구회 회장인 박재순 목사가 상임이사, 다석학회 회장인 정양모 신부, 다석사상연구회 회장인 김흥호 목사, 문동환 전 한신대 명예교수, 서영훈 전 적십자사 총재, 한승헌 전 감사원장, 풀무원 설립자인 원경선 평화원 원장, 류승국 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 등이 참여한다.

또 김수중 전 한국양명학회 회장,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서유석 대한철학회 부회장, 송인창 동양철학회 회장, 이병창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장 등도 자문위원으로 나선다.

재단은 앞으로 다석전집을 출간하고 함 선생의 세계평화사상 연구, 씨ㅱ상 제정, 씨ㅱ생명평화문화제 개최 등 다양한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김원호 재단 이사장은 “참 나를 찾고 그 나가 돼서 뭇 생명에게 거름이 되는, 생명 발전에 밑거름이 되는 생명과 평화의 사상이 바로 씨알 사상”이라며 “참 인간이 가야 할 길을 보여 준 그분들이 이 시대, 세계화의 시대에 꼭 필요한 우리의 스승”이라고 말했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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