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언론 대못질’]제1부 ⑮ 정보공개 꺼리는 정부

  • 입력 2007년 9월 28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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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동아일보의 A 기자는 6월 국정홍보처를 상대로 외국의 기자실 운영 실태에 관한 원자료(原資料)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그러나 홍보처는 ‘대외비’라는 이유를 들어 공개를 거부했다. 홍보처 관계자는 “같은 사안에 대해 시민 2명이 먼저 정보 공개를 청구했으나 ‘비공개’ 결정을 내렸고 동아일보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본보는 이튿날 홍보처가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국민에게 제시했던 외국 사례를 대외비라는 이유로 공개 거부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 며칠 뒤 홍보처에서 A 기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시민들이 낸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정보를 공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사례 2.

한 일간지의 B 기자는 5월에 건설교통부가 실시한 ‘부동산정책 만족도 조사 결과’에 대해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열흘 정도 지나 “보고서 중 일부가 인사 관련 자료로 사용돼 공개될 경우 공정한 인사 관리를 저해할 수 있어 이를 제외한 정보를 공개한다”는 답변이 왔다. 이후 건교부가 공개한 것은 100점 만점 중 63.6점이었던 종합만족도뿐이었다. 개별 항목에 대한 만족도 조사 결과는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겠다는 뜻을 수시로 밝혔다.

수치만 보면 정보 공개가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해에만 30만398건의 정보 공개가 청구돼 이 중 87.4%인 26만2681건(국가기록원 처리 현황 포함)이 공개됐다.

그러나 주요 정보는 아예 공개되지 않거나 알맹이가 빠진 채 공개되기 일쑤였다.

각 부처가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하는 ‘정보 목록’도 부실해 일반인은 물론이고 기자들도 필요한 정보가 어디 있는지 찾기 어려운 현실이다.

현재의 열악한 정보 공개 수준에서 언론의 취재를 차단하는 정부의 언론정책까지 모두 현실화될 경우 국민의 알 권리는 심각한 침해를 받을 것으로 언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비공개 기준

한 민간연구소의 연구원 C 씨는 7월 통일부와 국가기록원 2곳에 동시에 ‘제1차 남북 정상회담 관련 기록물 목록’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가 희한한 일을 당했다.

며칠 뒤 국가기록원은 C 씨에게 목록 정보 일체를 제공했다.

그러나 같은 자료를 놓고 통일부는 “남북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통일정책 수행에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며 C 씨에게 공개 거부를 통보했다.

C 씨는 필요한 자료는 확보했지만 통일부의 이상한 반응을 보고 이의신청을 냈다. 하지만 통일부는 목록 중 극히 일부만 공개했다.

이처럼 청구된 정보의 공개, 비공개 기준은 부처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이렇다 보니 많은 정부 기관은 정보공개법 9조 1항에 명시된 정보 비공개 요건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 민감한 정보의 공개를 거부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비공개 건수의 5%인 638건은 공개할 수 없는 이유조차 밝히지 않고 ‘기타’ 항목으로만 분류했다.

○질보다 양으로 채우는 정보 공개

공개 건수는 많지만 사안이 민감한 정보는 거의 공개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2005년 5월 참여연대는 법무부를 상대로 징계처분을 받은 검사들의 구체적 징계 사유를 공개하라며 정보 공개를 요청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개인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라는 이유로 비공개를 결정했다. 이후 참여연대는 행정소송 끝에 어렵게 정보를 받아냈다.

또 올해 6월 경제개혁연대는 2003년 외환은행 인수 당시 론스타가 은행법상 인수 자격이 있는지를 판단했던 금융감독위원회의 내부 자료를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금감위는 공개를 거부했지만 경제개혁연대는 12일 서울행정법원에 정보공개청구소송을 냈으며 지금까지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정보 공개에 소극적인 자세를 고쳐야 한다는 문제 제기는 정부 내부에도 있다.

행정자치부는 정보 공개 청구가 들어왔을 때 정부 기관이 이를 ‘악의적’으로 비공개할 경우 처벌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최근 밝혔다.

○부실 정보 목록으로 정보 공개 사전차단

정보 공개를 청구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부 기관이 어떤 정보를 생산했는지 알아야 한다.

하지만 많은 기관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정보의 목록을 제공하는 데 인색하다.

행자부는 2005년 각 부처에 ‘정보 목록 파일을 월 1회 이상 갱신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이를 실천하는 기관은 많지 않다.

조달청 홈페이지에는 아직 2005년 정보 목록이 떠 있다. 산업자원부 보건복지부 등은 올해 들어 한 번도 정보 목록을 갱신하지 않았다.

게다가 대부분 기관이 방대한 정보 목록을 제대로 분류해 놓지 않아 원하는 정보 목록을 찾으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전진한 한국국가기록연구회 연구원도 “유럽 등 선진국은 정부 부처들이 국민에게 꼭 필요해 공개해야 할 정보가 무엇인지 국민과 함께 고민한다”면서 “이에 비하면 한국 정부의 정보 공개는 한참 뒤떨어진 수준”이라고 말했다.

단국대 손태규(언론홍보학) 교수도 “공무원들이 자의적으로 정보 공개를 회피하는 행위를 뿌리 뽑을 제도와 절차의 보완이 필요하다”면서 “이런 제도의 충분한 보완 없이 언론의 취재를 가로막는 각종 방안을 도입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도별 정보공개 처리 현황 (단위:건,%)
연도청구건수처리 현황재판 계류 중기타(취하 등)
소계전부 공개부분 공개비공개
200615만58213만2964(100)10만6423(80)1만3970(11)1만2571(9)286 1만7332
200513만84112만879(100)9만6899(80)1만2568(11)1만1412(9)79 9883
200410만40249만6187(100)7만8089(81)8412(9)9686(10)43 7794
200319만229518만6087(100)17만828(92)7443(4)7816(4)96 6112
200210만814710만2319(100)8만9474(87)7064(7)5781(6)73 5755
20018만60868만165(100)6만6845(83)5997(8)7323(9)44 5877
20006만15865만8711(100)5만470(86)3839(7)4402(7)63 2812
19994만29304만1484(100)3만5580(86)3005(7)2899(7)18 1428
19982만63382만5475(100)2만1020(83)3108(12)1347(5)20843
2004년 이후는 국가기록원에 대한 정보공개청구건수 제외. 자료: 행정자치부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정보공개 청구訴 정부패소율 매년 늘어▼

현 정부 출범 후 정보공개를 거부한 정부나 공공기관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송이 급증하면서 정부나 공공기관의 패소율도 해마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대법원에 따르면 2002년 36건이던 정보공개 거부 처분 취소소송은 2003년 43건, 2004년 57건, 2005년 79건, 2006년 99건으로 해마다 늘었다.

특히 올해 들어서 제기된 정보공개 소송은 117건(10일 기준)으로, 이미 지난해 전체 건수를 넘어섰다.

행정자치부가 8월 발행한 ‘2006년 정보공개 연차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비공개 또는 부분 공개된 정보에 대해 1806건의 이의신청이 있었지만 이 중 받아들여진 것은 607건(34%)뿐이다. 2005년에도 1315건의 이의신청 중 383건(29%)만 받아들여졌다.

정보공개 소송에서 정부나 공공기관이 패소하는 비율도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정보공개 소송에서 패소하는 비율은 2003년 43.8%에서 2004년 50%, 2005년 59.6%, 2006년 66.7%로 매년 늘고 있다. 올해 들어 정부 및 공공기관의 패소율은 60.7%(10일 기준)에 달했다.

정부나 공공기관들은 정보공개법 9조를 근거로 해당 정보가 공개될 경우 △국가의 안전보장과 같은 중대한 국익 침해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 초래 △사생활의 비밀 침해 등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정보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패소율 급증은 정보 비공개를 통해 얻는 정부나 공공기관의 이익보다는 국민의 알 권리에 무게를 더 두는 최근 법원의 판결 추세를 보여 준다.

서울행정법원의 한 판사는 “정부의 패소율 급증은 정부가 비공개 대상 정보의 범위를 지나치게 폭넓게 해석해 정보공개를 부당하게 거부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정부 측의 자의적 해석을 막기 위해서는 정보공개법상의 비공개 대상 정보를 좀 더 구체적이고 엄격하게 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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