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는 책의 향기]<끝>세계로 나아갈 아들아

  • 입력 2007년 9월 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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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이강근<경주대 문화재학부 교수>

To: 고등학생으로 성장한 아들 유재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에 너를 데리고 방글라데시에 가서 지냈던 한 달이 지금도 생생하구나. 남을 도울 줄 아는 마음을 싹 틔우기 위해 도울 것이 많은 나라를 무작정 찾아갔던 터라, 빈민촌 어린이집에서의 작은 봉사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함께 겪었지. 어느덧 어엿한 고등학생이 된 네게 장래의 꿈이 무어냐고 물을 때 네 입에서 “국제 문제 전문가요”라는 대답이 나오면 “그러면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 것도 다 그때 한 달의 기억 때문이란다.

꿈을 실현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네게 특정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도록 다그치고 있지만, 한편으로 네가 “암기과목은 싫지만 국사는 좋아요. 선생님께서도 제 국사 실력을 인정하시거든요”라고 할 때 더 뿌듯하단다. 태어나고 길러 준 제 나라의 역사를 잘 이해해야만 다른 나라 사람들의 역사도 존중할 줄 알게 되는 것 아니겠니.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신 집현전처럼 조선 왕조의 훌륭한 업적이 탄생된 공간이 궁궐 안 어디인지를 알고 싶으면 역사학자 한영우 선생의 ‘창덕궁과 창경궁’(열화당)을 읽는 것이 좋겠다.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들이 빠짐없이 둘러보는 곳이 서울의 조선 궁궐이라는 건 너도 잘 알 거야. 그동안 베우고 익힌 외국어 실력을 발휘해 궁궐에서 만들어진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와 눈앞에 펼쳐진 목조건축 예술의 아름다움을 잘 설명하고 싶다면, 신영훈 선생의 ‘조선의 궁궐’(조선일보사)을 읽어 보아라.

우리 고유의 궁중 문화에 대해 더 나은 설명을 할 수 있으려면, 궁중에 살았던 다양한 계층의 의식주 생활이 어떠했는지도 공부해 둬야겠지. 김용숙 선생의 ‘조선조 궁중풍속연구’(일지사)는 “궁궐에 들어간 지 15년 만에 머리를 얹고, 또다시 15년 만에 비로소 상궁이 돼 제구실을 했던 궁녀와도 같이 궁중풍속 연구에 들어선 지 꼭 30년 만에 단행본으로서 펴내니 감회가 새롭다”고 저자가 말한 필생의 역작이란다.

조선 시대 궁궐에서 뒤쪽은 왕과 왕비를 중심으로 한 왕실 일가족의 삶터이자, 그들의 의식주를 도와주던 수많은 궁녀와 내시들의 일터였단다. 그곳에는 집과 우물과 같은 생활 시설만 있었던 게 아니라 연못과 화원, 동산과 숲이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었지. 외국인들이 감탄하고 부러워하는 우리 궁궐의 아름다움도 대부분 집과 자연의 조화에 대한 것이란다.

어떤 나무를 심어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나무 전문가 박상진 선생의 ‘궁궐의 우리나무’(눌와)를 들고 궁궐을 구석구석 누벼 보기 바란다. 나무에도 국적이 있는지, 세계 학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학명 가운데 우리 나무 이름도 있는지 등은 외국인과의 대화에서 재미있는 소재가 되겠지.

요즈음 우리 궁궐 문화의 가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모임을 만들어 한복까지 곱게 차려 입고 무료 안내를 하는 모습을 어느 궁궐에서나 볼 수 있단다.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에게까지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그분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네가 자라고 있는 이 시대가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입시 공부에 지친 심신을 다스려야 할 때 가끔씩은 궁궐에 가서 나라를 이끈 이들의 호흡을 느끼며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긍정하는 국제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본 코너는 오늘자로 끝납니다.

※ 본 코너는 오늘자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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