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런 뮤지컬 배우 어디 없나요?

  • 입력 2007년 9월 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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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막을 올리는 뮤지컬 ‘시카고’는 인기 스타 옥주현이 여주인공 록시 역을 맡아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아는 뮤지컬 마니아들이 궁금해하는 캐스팅은 따로 있다. 누가 ‘메리 선샤인’을 맡느냐는 거다. ‘메리 선샤인’은 록시의 추잡한 과거를 미화하는 기사를 하이 소프라노로 노래하는 여기자. 평범한 듯한 조연이지만 캐스팅은 결코 쉽지 않다. 왜? 마지막 커튼콜 때 관객들의 박수와 탄성을 자아내는 ‘메리 선샤인’ 역의 배우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11월에 첫선을 보이는 브로드웨이 히트 뮤지컬 ‘헤어스프레이’도 캐스팅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 뮤지컬이 내건 여주인공의 첫째 조건은 독특하다. “통통한(Chubby) 것도 안 되고 뚱뚱해야(Fat) 한다.” 뚱뚱한 10대 소녀 트레이시가 인기 TV 쇼에 출연해 멋진 춤 솜씨로 스타가 되는 내용을 다룬 이 뮤지컬은 뚱뚱한 여배우가 주연을 맡아 여주인공에 대한 ‘편견’을 통쾌하게 깨는 것으로도 주목받았다.

이 때문에 국내 제작진은 오디션을 보는 여배우마다 “팔뚝과 종아리를 보여 달라”며 뚱뚱한 여배우 찾기에 나섰지만 뚱뚱하면서도 날렵하게 춤도 추고 노래도 잘하는 젊은 여배우가 없었던 것. 결국 제작진은 키 160cm에 몸무게 60kg 안팎인 ‘통통한’ 신인 여배우 한 명을 겨우 찾아낸 걸로 만족해야 했다. 더블캐스팅된, 키 165cm에 몸무게 48kg의 ‘부적절한’ 몸매의 또 다른 여배우는 할 수 없이 특수 분장을 할 예정.

‘헤어스프레이’의 연출가 김재성 씨는 “배우들의 노래나 춤, 연기의 기량은 예전에 비해 현격히 좋아져 예전에는 소화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브로드웨이 작품들이 속속 무대에 오르고 있으나 여전히 배우층은 얇아서 다양해지는 캐릭터에 딱 맞는 배우를 찾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트레이시의 엄마 에드나 역도 아직까지 캐스팅이 확정되지 않아 애태우는 중이다. 에드나는 가슴 사이즈가 ‘54인치에 트리플 E컵’일 정도로 거구 캐릭터. 이 뮤지컬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캐릭터로 남자 배우가 여장을 하고 나오는데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엄마 에드나 역을 열연한 하비 피어스타인은 덕분에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흑백 갈등이 등장하는 작품도 고민거리다. 국내에서 인기를 끈 뮤지컬 ‘올슉업’에는 술집 주인의 딸과 시장 아들의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지만 브로드웨이 원작에서는 술집 주인의 딸은 흑인 여배우가, 시장 아들은 백인 남자 배우가 맡아 ‘피부색을 뛰어넘는 사랑’에 초점이 맞춰졌다. ‘올슉업’의 제작사인 오디뮤지컬컴퍼니는 “흑백 갈등은 국내에서 와 닿는 소재가 아닌 데다 표현하기 쉽지 않아 각색 과정에서 뺐다”고 말했다.

하지만 흑백 갈등이 극중 중요한 기능을 하는 ‘헤어스프레이’의 경우 앙상블(단역)을 뽑는 주요 기준 중 하나는 피부색이었다. 피부가 검은 편인 배우는 ‘흑인팀’으로, 피부가 흰 편인 배우는 ‘백인팀’으로 구분해 뽑았지만 이 정도만으로는 무대에서 ‘흑백’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고민거리. “흑인팀은 옥상에서, 백인팀은 지하에서 연습하라”는 농담마저 나돌 정도. 결국 제작사 측은 흑인팀 배우 모두 공연 전까지 지속적인 인공 선탠으로 피부를 최대한 검게 만들기로 했다.

얼마 전 오디션을 끝낸 뮤지컬 ‘스펠링 비’도 여주인공 ‘마시 박’을 찾지 못해 고민 중이다. 극성스러운 부모의 교육열 덕분에 6개 언어를 구사하고 텀블링과 운동도 잘하며 피아노도 수준급인 ‘알파걸’ 역이다. 한국인 이민 2세를 빗댄 이 캐릭터는 브로드웨이에서는 반드시 아시아계 배우가 맡는다. 국내 공연에서는 한국 배우가 ‘한국계 미국인’ 역할을 해야 하는 셈. 문제는 무대에서 공중제비도 몇 바퀴씩 도는 고난도의 안무를 소화할 수 있고, 가창력이 뛰어나며 10대로 보이는 앳된 외모의 여배우를 찾아내야 한다는 점. 브로드웨이에서는 극중 배우의 연령이 ‘초등 중고학년’이지만 국내에서는 ‘중학생’으로 나이를 올린 것도 선택할 수 있는 배우 폭이 넓지 않아서다.

주연급을 맡길 만한 젊은 배우가 부족한 것 못지않게 중장년 뮤지컬 전문 배우가 부족한 것도 큰 고민거리다. 무대 경험이 풍부한 60, 70대 노배우들이 노역을 맡는 외국과 달리 뮤지컬 역사가 짧은 국내에서는 뮤지컬 배우들이 20, 30대에 집중돼 있기 때문. 중견 TV 탤런트들을 영입하기도 하지만 가창력 부족 등의 지적이 뒤따른다. 신시뮤지컬컴퍼니의 정소애 실장은 “예전엔 젊은 배우가 머리에 흰 가발을 쓰고 등장해도 관객들이 이해했지만 이제는 눈높이가 높아져 제대로 된 배역 캐스팅을 요구하는 추세여서 중년이나 노역 캐스팅은 특히 어렵다”고 말했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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