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는 책의 향기]달빛 연병장 거닐며 별빛같은 동시…

  • 입력 2007년 8월 2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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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아빠 최영록<성균관대 홍보전문위원>

To: 입대해 훈련소 뒹구는 아들 한울

게릴라성 호우가 한바탕 극성을 떨고 지나가자 요 며칠 완전히 가마솥더위다. 이 땡볕에 군에 입대하여 4주차 훈련을 받고 있을 너를 생각한다. 얼마나 고생이 막심하겠느냐. 이제 보름만 있으면 대한민국의 의젓한 군인이 될 너를 그린다.

내가 겪은 30년 전의 군대는 솔직히 ‘민주 군대’가 아니었다. 자기 계발할 짬이 없었다. 하지만 너희 세대의 군 생활은 다르다고 들었다. 중고참만 되어도 개인 시간이 많다고 하니, 건강한 몸으로 군 생활을 하며 틈틈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특히 네가 우리말과 글에 관련한 책을 읽었으면 한다. 우리의 말과 글은 민족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는 그릇이다. 말과 글이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니. 우리는 한때 일제로 인해 우리말과 글을 쓰지 못했다. 얼마나 원통했을까. 애국 선조들은 조선어학회를 만들어 우리말과 글을 갈고 닦았다. 그분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에 우리는 민족혼을 지킬 수 있었다. 이런 소중한 우리말과 글을 어찌 나 몰라라 할 수 있을까. 국제화가 될수록 국적불명의 언어가 날뛰고 있다.

‘한국어가 있다’(1∼3권·커뮤니케이션북스)에는 우리가 흔히 쓰는 말 가운데 잘못 알고 있거나 헷갈리기 쉬운 것들을 예시하고, 쓰지 않아도 되는 외래어 아닌 외국어, 추방해야 할 생활 속 일본어, 살려 써야 할 아름다운 우리말들이 석류알처럼 촘촘히 박혀 있다. 신문사 교열기자들의 칼럼 시리즈를 묶었다.

이 책이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국민교과서’라면, 농학박사 성제훈 씨가 최근 3년간 우리말 사랑의 열매를 모아 펴낸 ‘우리말편지’(1, 2권·뿌리와이파리)는 ‘연애편지’라 하겠다. 지은이는 ‘우리말 123’이라는 e메일을 날마다 수천 명에게 공짜로 보내 주고 있다.

가끔 골치가 아플 때는 안학수의 동시집 ‘낙지네 개흙잔치’(창비)를 읽어라. 65편의 시 속에는 감칠맛 나는 의성어, 의태어가 즐비하다. 밀릉슬릉, 스랑그랑, 뾰룩뵤룩, 얼싸절싸, 오공조공, 폴라락 쫄라락…. 저절로 웃음이 비어져 나오고 기분이 썩 좋아질 것이다. 아름다운 우리말은 마치 한복처럼 우리 몸에 부드럽게 안겨 편하고 좋은 것이다.

또 부제가 ‘글쓰기에 좋은 말글사전’인 ‘입에 익은 우리 익은말’(김준영 지음·학고재)을 찬찬히 새겨 읽어 보자. 익은말이란 숙어, 성어, 관용구다. 미수(88세)의 저자가 일평생 357개를 모아 사전으로 꾸몄다. 이런 말들이 널리 쓰여 우리 일상의 정서와 언어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면 원이 없겠다는 저자의 말에 어찌 숙연해지지 않을 수 있겠느냐.

‘전라도 우리 탯말’(소금나무)은 또 어떠냐. 탯말은 어머니 자궁 내에서 아기가 듣고 배운 말이다. 유전인자에 깊숙이 박힌 ‘영혼의 말’로, 사투리와 방언의 이음동의어도 되겠다. 탯말은 늙어 죽을 때까지 자기의 정체성을 이루게 된다고 한다. 전라도에는 전라도 탯말이 있고 경상도와 충청도, 제주도에는 각각 그 지역에 맞는 탯말이 있을 것이다. 서울 태생인 너는 잘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간접 경험을 통해서라도 ‘말의 맛과 멋’을 맛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100일 휴가를 나오면 추천한 책을 모두 챙겨 주마.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는 말이 떠오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가 단군 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한민족의 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너의 건강과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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