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구본형]‘독서 피서’ 인문학에 빠져 보자

  • 입력 2007년 7월 2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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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다. 그곳이 모두 시장이다. 이것이 글로벌 경영자의 관점이다. 광대한 천지에 자신의 족적을 남기는 일이 곧 시장에서의 승리다. 싸움과 승리 그리고 이어지는 성공이야말로 경영자가 가장 선호하는 전리품이다.

넓은 땅에 족적을 남기기 위해서는 발을 놓는 자리가 중요하다. 전진을 위해 발이 놓이는 기회의 자리에 자원을 집중 투입함으로써 가장 효율적인 성과를 얻어 내면 훌륭한 경영자로 칭송 받는다. 실용의 승리다. 발이 놓이는 필요한 자리만 남겨 두고 주위의 불필요한 땅을 다 파내면 사람들은 걸을 수 없다. 장자는 주위의 불필요한 땅을 ‘쓸모없는 것의 유용함’이라고 부른다.

실용 가능케 하는 광대한 땅

실용은 무용(無用)의 도움이 필요하다. 인문학은 실용을 가능하게 하는 무용의 광대무변한 땅이다. 경영은 대단히 실용적이다. 하지만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실용성이 설 자리가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경영학과 인문학은 서로 만나게 된다.

매킨지는 이 시대를 ‘인재전쟁(war for talent)’의 시대로 규정했다. 누가 누구를 얻고 어떤 아이디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 인재의 시대에 사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경영할 수 없다. 돈과 이해득실만 가지고는 사람의 마음을 잡을 수 없다.

또 세상을 모르면 변화를 다룰 수 없다. 변화를 다루지 못하면 기업은 이미 죽은 것이다. 혁신 기업만이 성장과 번영을 재생산한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통찰로 가득 차 찬연히 빛나는 인류의 보고가 바로 문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이 중심을 이루는 인문학이다.

문학을 알지 못하면 상상력의 힘을 작동시킬 수 없다. 가장 창의적인 경영자 중 한 사람인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18세기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에 감흥을 느낀다. 애플의 아이폰 발명은 블레이크의 시와 깊은 관련성이 있는지 모른다. 한계를 모르는 인간의 정신과 상상력은 현실을 뛰어넘는 도약의 날개였고 문학이 가장 아끼는 에너지였다.

한편 역사는 아이로니컬하게도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게 한다. 역사는 과거를 다룸으로써 스스로를 박제화하지 않고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감지하도록 돕는다.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며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을 창조한 자크 아탈리는 ‘미래의 물결’이라는 책에서 미래를 이야기하기 위해 책의 3분의 1 이상을 과거에 할애했다. ‘과거를 관통하며 변하지 않는 상수(常數)가 반드시 있고, 과거는 역사의 구조로 작용함으로써 다가올 몇십 년 후가 어떤 식으로 조직될지 예측 가능’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철학은 중심을 잡고 설 수 있게 한다. 중심을 잡은 경영자는 스스로를 성찰하고 욕심을 자제하고 돈을 벌게 해 준 공동체를 기억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엔론과 월드컴의 경영자같이 파산의 길을 따르게 된다.

처세의 벽 뚫고 文史哲속으로

인문학의 위기라고 말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처럼 인문학의 수요가 많은 때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상업주의와 시장 만능의 이면을 흐르는 스트림은 오히려 인간성에 대한 향수와 꿈과 열정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더욱이 지금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이 창의력과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시대다.

인문학은 그동안 인간정신으로 흘러드는 마를 줄 모르는 수원지였다. 사람과 세상을 잡는 커다란 그물이었다. 인생을 건 일이 아름답지 않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닐 때 삶은 돌연 허물어진다. 인생을 경영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더운 여름, 처세와 실용의 벽에 갇힌 정신의 둑을 뚫고 인간과 역사와 철학을 담은 책이 폭포 같은 물줄기처럼 자신에게 들어오게 하자.

구본형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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