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8년 ‘고리 1호기’ 준공

  • 입력 2007년 7월 2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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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古里).

한국 원자력발전의 역사에서는 ‘처음’과 같은 말이다.

1978년 7월 20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에 박정희 대통령과 3부 요인이 모두 모였다. 한국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의 준공식에 참석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치사에는 진한 감격이 묻어 있었다.

“원자력발전소를 역사상 처음으로 건설하고 그 1호기 준공식을 갖게 된 것은 조국 근대화와 민족중흥의 도정에서 이룩한 하나의 기념탑이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원자력시대에 접어들었고 과학 기술의 커다란 전환점을 이룩하게 됐습니다.”

한국이 세계에서 31번째, 동아시아에서는 2번째로 원자력발전국 대열에 참여하게 됐으니 감격할 만했다.

하지만 최첨단 원자력발전의 시작을 축하하는 치사에는 한국의 한계도 담겨 있었다.

“넉넉한 부존자원을 갖지 못한 우리가 세계의 부강한 나라들과 어깨를 겨루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평소에 검소하고 절약하는 생활기풍을 계속 길러나가야 할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기름 한 방울을 아끼고 전기 사용에서도 낭비를 삼가는 알뜰한 생활태도를 미풍으로 삼으라”고 거듭 강조했다.

고리의 탄생 이유도 그의 말대로 ‘기름(석유) 아끼기’를 위한 것이었다. 고리 1호기는 당시 87%에 이르던 유류 발전의 비중을 약 9%포인트 떨어뜨리는 효과를 낳았다.

고리는 착공 7년 7개월 만에 그야말로 난산(難産) 끝에 태어났는데 그것도 기름 때문이었다.

당시 건설 전반을 담당했던 이종훈 전 한국전력 사장이 ‘한국원자력창업비사’란 책에서 털어놓은 회고.

“석유 파동에 따른 물가 상승 여파로 공사를 맡은 영국 회사의 태도가 소극적으로 변하자 공사 진행이 매우 지지부진했습니다. 물가 폭등에 대한 보상을 해 주지 않으니까 일이 진척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고리 1호기의 2006년 발전량인 47억6700만 kWh는 석유 90만 t을 대체한다. 기름에 맺힌 한을 충분히 갚아 온 셈이다.

1977년 시험 가동을 시작한 고리 1호기는 설계수명(30년)이 다해 6월 9일부터 가동이 중단됐다. 올해 말이면 수리해서 10년 더 쓸지, 영구 폐기할지가 결정된다고 한다.

그 결정이 무엇이든 ‘한국 원자력발전소 1호’에 대한 예우만큼은 끝까지 제대로 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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