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풍경]왜 출판사를 하냐고요?

  • 입력 2007년 7월 1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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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출판인을 수년 만에 만났다. 대형 출판사에서 베스트셀러도 많이 만들어 본 40대 초반의 출판 베테랑이었다. 그는 독립을 해서 한 출판사의 대표가 되어 있었다. 직원도 몇 명 있고, 어딘가에서 투자도 받았다고 했다.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투자 받은 것도 결국은 빚인데 좀 부담스럽지 않나요. 적은 비용으로 1인 출판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데 3, 4년 그들처럼 실속 있게 운영한 뒤에 사세를 확장하는 게 좀 더 낫지 않았을까요.”

그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출판계 월급이 너무 열악하다는 것 더 잘 아시잖아요. 제가 투자를 유치한 것은 직원들에게 월급을 넉넉히 주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래서 1인 출판은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1인 출판을 하면 출판계 사람들을 월급으로 도와줄 수 없으니까요.”

마케팅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투자를 유치했을 것이란 기자의 생각을 여지없이 깨버리는 말이었다. 출판계 사람들의 넉넉한 월급을 위해 투자를 받았다는 얘기는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그 투자 때문에 과도하게 베스트셀러에 집착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돈 까먹는 건 순식간인데, 자칫 투자 받은 돈이 날아가 버린다면 외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다음 날 그에게서 e메일이 왔다. 이런 대목이 있었다.

‘책장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제 영혼은 성장해 왔고 꿈을 키워 왔습니다. 종이밥을 먹으며 십수 년, 젊음을 보냈습니다. 언제나 출판계는 어렵고 불황이었다고 합니다. 늘 영세했으며 야근과 박봉으로 우울했고 불완전 고용으로 피곤했습니다. 오래전 창고에서 그라인더로 책을 갈아 재생시키던 창고지기 할아버지의 책 먼지 뒤집어쓴 하얀 머리칼이 떠오릅니다. 문득 숱한 젊은이가 바스락거리는 책장을 넘기다가 고개를 들면 그땐 허연 반백이 되어 있지 않을까 망연해집니다.

사실, 슬프게도 이 장면은 단지 비현실적인 상상에 불과합니다. 결코 반백의 중늙은이가 출판사에 존재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니까요.

베스트셀러를 여럿 만들어 보았지만, 결국 그 무엇도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절망에 빠지곤 했습니다. 대다수가 불완전고용 상태나 다름없는 대한민국 출판계 샐러리맨의 운명이었던 거지요…1인 또는 소규모 출판사의 한계는 개인의 비전에만 머물고 우리 출판계 전체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사람의 심장 소리가 들리고 마음의 풍경이 보이고, 인간 정신이 생생히 살아 있는 그런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한국 출판에 대한 그의 고민을 읽을 수 있는 e메일이었다. 또한 한국 출판을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바라보게 하는 계기도 됐다.

이번 주말, 그에게 답장을 보내야겠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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