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성석제의 그림읽기]정직한 주유소

  • 입력 2007년 7월 1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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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이 워낙 비싸니 승용차 계기반에 기름이 떨어져 간다는 신호가 들어왔는데도 값이 한 푼이라도 싼 주유소를 악착같이 찾아다니게 됩니다. 가격을 써 놓은 입간판을 비교하면서 지나치는데 눈에 띄는 문구가 있군요.

바로 ‘○○사 보증 정품 정량’이라는 겁니다. ‘○○사’라는 정유회사가 품질을 보증하는 ‘정품’을 양을 속이지 않고 판매한다는 뜻이겠지요. 멀리서 봐도 ‘○○사’ 대리점이라는 걸 알 수 있는데 정품, 정량 판매를 보증까지 할 이유가 있는지 아리송합니다.

‘정품 100%’라고 써 놓은 곳도 있습니다. 그럼 다른 주유소의 정품은 90%나 10%만 정품, 정량으로 판매한다는 말일까요? 아니면 그 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지금은 순수한 100% 기름을 판다는 말일까요?

그런가 하면 직영주유소라는 단어를 내세운 데도 있습니다. 공신력이 높은 정유회사가 직영하는 곳이다 보니 일반 대리점에 비해 손님들이 많아 보이긴 합니다.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비교적 후미진 도로변에 있는 개인이 운영하는 주유소에 들어갔습니다. 낡은 생김새에 디자인이 촌스러워도 가격이 훨씬 쌌거든요. 기름을 넣으면서 보니 신용카드 할인이나 적립은 안 되는지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거기다 세차 할인까지 감안하면 정작 어느 쪽이 싼 건지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그런데 주유소 앞마당에 서 있는 기름 나르는 트럭의 탱크에는 저마다 다른 정유회사의 마크가 새겨져 있네요. 연유를 물어보려다 보니 계산대 위에 커다랗게 씌어 있는 문장이 눈길을 확 잡아끌었습니다.

“저희는 정직합니다!”

저희는 복수로 쓰이긴 했어도 그 주유소를 운영하는 개인을 지칭하는 말이겠지요. 정유회사의 마크를 단 큰 주유소들이 정품, 정량의 ‘정’을 강조하니까 개인이 운영하는 주유소는 개인의 미덕인 정직의 ‘정’으로 맞서고 있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정직의 ‘직’은 또 직영의 그 ‘직’자군요.

정직한 사람들은 정직이라는 말을 좀처럼 입 밖에 내지 않는데 왜 주유소들에서만 ‘정’과 ‘직’을 강조하는지 점점 궁금해지더군요. 이래저래 심사가 복잡해지니 불필요한 화물이 늘어난 기분이었습니다. 화물칸이 복잡해지면 연료가 더 들 거라는 생각이 스쳐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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