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홀로코스트 부른 ‘잘못된 만남’

  • 입력 2007년 7월 7일 03시 06분


코멘트
◇비트겐슈타인과 히틀러/킴벌리 코니시 지음·남경태 옮김/456쪽·1만8000원·그린비

이 책의 출발점은 1904년경 촬영된 오스트리아 3대 도시 린츠의 국립중등학교(레알슐레) 학생들의 단체사진이다. 오른쪽 맨 뒤 학생은 20세기의 가장 악명 높은 인물, 아돌프 히틀러다. 바로 앞줄 오른쪽에서 3번째 학생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철학자로 꼽히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다. 1889년 4월에 태어난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린츠 레알슐레에서 2년간 학창시절을 보냈다.

히틀러와 비트겐슈타인은 닮은 점이 많았다. 휘파람으로 전곡을 소화할 만큼 바그너의 오페라에 심취했고, 의지를 강조한 쇼펜하워의 철학에 매료됐으며 당시 오스트리아 미술계에 충격을 안겨 준 ‘분리파’ 화가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 교유관계가 서툰 점도 닮았다.

사춘기 시절 그렇게 닮은 친구는 오히려 적이 되기 쉽다. 저자는 히틀러의 생애에서 반유대주의적 성향이 최초로 등장한 사건이 레알슐레 시절 한 유대인 학생에게 ‘이 더러운 유대놈아’라고 소리친 순간임을 포착했다. 이는 히틀러가 한 개인으로서 유대인에 대한 반감을 표한 유일한 사건이라고 한다. 사실 비트겐슈타인은 ‘비호감’의 전형이었다. 오스트리아 최고 부잣집 도련님에 지나치게 똑똑했을 뿐 아니라 동성애 성향을 지녔고, 자신의 고결함은 물론 죄악까지 까발려야 직성이 풀리는 신경증 환자였다. 열등감이 심하고 예민한 히틀러에게 그런 비트겐슈타인은 어떻게 비쳤을까.

호주 역사학자인 저자는 이 두 사람의 전기와 친필 기록, 목격담을 총동원해 홀로코스트의 비극이 둘의 ‘잘못된 만남’에서 시작됐으며 나치의 비밀암호 해독을 통해 그 악연을 종식시킨 주역도 비트겐슈타인이라고 주장한다.

역사적 우연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저자의 결론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소년 시절 비극적 추억이 엄청난 재앙으로 연결된다는 모티브를 끌고 간 이야기 솜씨만큼은 일본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浦澤直樹)의 ‘몬스터’나 ‘20세기 소년’만큼 흥미진진하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