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늘 떠났지만, 마주치는 건 ‘나’였다

  • 입력 2007년 7월 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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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말을 듣다/윤후명 지음/328쪽·1만 원·문학과지성사

윤후명(61·사진) 씨는 늘 떠남으로써 글을 얻었다. 러시아에서 ‘하얀 배’를, 중국에서 ‘둔황의 사랑’을 얻었다. 6년 만의 새 소설집 ‘새의 말을 듣다’ 속 작품들도 그런 여정에서 건져 올린 것이다. 이를 두고 평론가 오생근 씨는 “그들(소설 속 주인공들)의 떠남은 내면으로의 여행을 위해서이고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만남의 시간을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표제작 ‘새의 말을 듣다’의 주인공인 소설가 ‘나’는 생애 두 번째로 독도로 가는 뱃길에 오른다. ‘나’는 바다의 동물과 섬의 식물을 두 눈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여행 중 바이칼 호수를 다녀왔다는 사내를 만난다. 알타이어를 공부한다는 사내는 새의 말이 알타이어로 들린다고 말한다. ‘나’는 그제야 자신의 귀에 새의 울음소리가 한국어로 들린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은 작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인하는 계기다.

책에 묶인 10편의 단편은 모두 ‘나’가 주인공이다. 윤 씨 자신이 “누구나 다 잃어버린 것이 있다. 그 잃어버린 모든 것을 나는 소설에서 찾고 또 묻는다”고 고백했듯, 그는 소설에서 ‘나’를 떠나보냄으로써 숨 가쁜 현대에서 잦아든 깊은 내면을 찾아내려고 한다. 단편 ‘고원으로 가다’에서 영월로 가던 ‘나’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고원으로 가서 숨어 살고 싶어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나는 왜 늘 어디론가 떠난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살아온 것인지 까닭 모를 일이었다. 사람을 만나려 하건만, 진정한 만남이란 어디에 있는지 알 길 없음에 쓸쓸해서 늘 떠남을 가슴에 새기는 것일까.’

떠남으로써 마주하는 것은 과거의 ‘나’다. ‘새의 말을 듣다’에서도, ‘소행성’의 ‘분노의 강’에서도 화자는 여행길에서 낯선 풍경을 보는 게 아니라 묻어 두었던 과거의 기억과 조우한다.

청계천(‘서울, 촛불 랩소디’)이나 종로의 연등 행렬(‘의자에 관한 사랑 철학’) 같은, 시내를 떠도는 작품도 있다. 어쩌면 자주 봐서 익숙해진 곳이겠지만, 작가는 멀지 않은 장소로 ‘떠나는’ 행위로도 자아를 발견하는 여행을 할 수 있음을 일러 준다.

‘우리는 길 한복판으로 나아가 멀리 사라져가는 등불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나는 삶의 원형을 마련해 두고 그에 맞추려고 애쓰고 있는가. 아니면 토막토막의 삶을 맞추어 내 삶을 완성하려고 하는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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