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성석제의 그림 읽기]철 잃은 복숭아

  • 입력 2007년 6월 2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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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의 과일가게 진열대를 보니 복숭아가 나와 있더군요. “아니, 벌써 복숭아가?”라고 하니까 과일가게 처녀 말이 요즘 과일 가운데 하우스 재배를 안 하는 게 별로 없다는 겁니다. 하기는 두 개씩 포장된 복숭아 옆에 포도, 자두, 살구, 산딸기 등등이 즐비하게 놓여 있는 게 보였습니다. 수박, 참외, 토마토는 물론이고요.

“그래도 그렇지 과일들이 철이 없어도 단체로 너무 없는 거 같네요. 복숭아까지 그럴 줄 몰랐네.”

처녀는 “비닐을 씌우고 불을 때 대는데 지가 안 달리고 배기겠느냐”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하우스 감귤’은 옛적부터 있었지요. 감귤의 경우는 따뜻한 지방에서 재배하니까 비닐하우스 안에서 키워서 철을 가리지 않고 값이 좋을 때를 맞춰 출하를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복숭아꽃, 살구꽃이 피어야 ‘고향의 봄’을 맞는 곳에서 생장해서 그럴까요. 복숭아나무는 ‘귀신 잡는 해병’의 아득한 선배로, 불로장생하게 하는 영험이 있는 천도복숭아의 전설을 통해 뭔가 좀 고상하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요. 우리의 영민한 입맛이 복숭아나무마저 ‘철없는’ 나무로 만들어 버린 게 아닌가 싶군요.

복숭아 두 개를 포장해 놓고 받는 값이 9000원 하고도 또 몇백 원… 웬만한 수박 값이군요. 제 머릿속에는 ‘신포도와 여우’의 이야기에 나오는 그 여우의 후손이 살고 있거든요. ‘저 복숭아는 틀림없이 실 거야’라고 속삭이는 겁니다. 저는 처녀에게 물었습니다.

“조생종 같은데 맛이 없는 거 아닌가요?”

처녀는 정색을 하고 말했습니다.

“이건 조생종이 아니라 중생종이에요. 어차피 돈 들여 키울 것, 하우스 안에는 맛있는 품종을 골라서 심는답니다. 완전히 익어서 맛있어요.”

‘그래 봤자야’ 하고 머릿속 여우가 속삭였지만 ‘철없는’ 저는 ‘철 잃은’ 복숭아 하나를 집어 들었지요. 철을 잃은 게 어디 복숭아 탓인가요? 또 철없는 게 어디 복숭아뿐이겠어요?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 이상이 냉난방시설이 되어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겨울에는 반바지 차림으로 살고 여름 내내 감기를 단 채 긴팔 옷을 입는 사람들도 꽤 됩니다. 누가 철없다, 철 가리지 않는다고 나무라지는 않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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