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들려주는 인생수업]쉰, 여백의 나이

  • 입력 2007년 6월 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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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웃도 세상도 이제야 보인다

내 주변 50대 여성들에게 30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물으면, 거의가 “싫다”고 한다. 남자들이나 나이 어린 세대들에게 이런 이야길 전하면 납득을 잘 못한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물어 봐도 “(돌아가기) 싫다”.

30대란 여자들에게 가장 바쁜 나이다. 어미 노릇하느라 뼈가 휘어지고 같이 산 지 얼마 안 되는 남편과 티격태격하며 매사를 조율해야 한다. 이 조율은 지금까지 살아 온 세월을 송두리째 구부리는 힘겨운 변신 과정이다. 그 지난한 일들을 다시 겪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50대에 접어드니 비로소 인생의 한가함과 여유가 느껴진다. 아이도 더는 어미의 잔손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물론 자식 키우는 일에는 또 다른 힘든 일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지만 밤잠 설치며 젖을 먹이고 하루 종일 쫓아 다녀야 하는 수고와는 차원이 다르다.

나이가 드니 인생 전체를 생각하게도 되고, 가족을 벗어나 친구와 함께 여행 같은 걸 도모하기도 한다. 남성, 여성, 가정의 관점에서 벗어나 이웃, 친구, 세계 등을 생각하게 된다. 구름도 다시 바라보며, 살갗에 스치는 바람도 다시 느끼며 오랜만에 소녀가 된 듯한 신기한 경험도 해 본다.

50대는 40대와 또 다르다.

나는 마흔한두 살 무렵에 심한 허무와 허탈의 늪지대를 통과했다. 그때는 사회적 분위기도 지금 같지 않아 서른아홉이나 마흔은 여성성의 고비로 생각되었다. 2, 3년간 마음의 몸살을 앓고 나서 나는 이제 ‘햇노인’이 되어 편해졌다.

인생은 하나의 연속이지 마디마디를 무슨 시절 무슨 시절로 잘라 심리학책에서처럼 서술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나 또한 남들과 똑같은 젊은 시절을 건너왔으니 억울할 게 없다.

이 나이에도 마음속 깊이 어딘가에 이성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많은 중년이 배우자 유무를 떠나 또 다른 이성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을 알고는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궁여지책(?)으로 첫사랑을 만나 보려는 사람들도 있다.

50대에는 첫사랑 상대를 만나도 40대나 30대 때처럼 위험스러운(?) 사태로 발전하지 않는다. 그저 만나 보고, 이제는 늙어 버린 그(혹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기겁하여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여전히 막연하게 그려 본다. 내 님은 누구일까 어디 계실까? 무엇을 하는 임일까 만나보고 싶네…. 안개 자욱한 내 ‘호반의 벤치’에는 과연 누가 앉아 있을까?

소설가 이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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