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38년 의적 로빈 후드 영화화

  • 입력 2007년 5월 12일 15시 17분


코멘트
‘굶어죽는 것보단 법을 어기는 게 더 낫다.’(중국 격언)

그저 전설일까. 실제 백작의 별명이라고, 사실이란 주장도 있으나 증거는 없다. 켈트족의 신이라는 설도 있다. 한 민담에선 ‘머리 위의 새부리(Robin of the Hood)’라는 점에 착안해 뿔이 난 악마의 변형으로 보기도 한다.

로빈 후드.

문학에선 14세기 후반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농부 피어스의 환상.’ 제목부터 기층계급 농민의 설움이 묻어난다. 잉글랜드 셔우드 숲을 근거지로 한 의적은 포악한 관리와 귀족, 욕심 많은 성직자를 혼내준다. 재산까지 나눠주니 누군들 안 좋아할까.

의적이 유럽 민초들의 사랑을 받자 로빈 후드라 자처한 산적도 있었다. 어린이의 영웅이자 연극과 문학의 단골소재였다. 1938년 5월 12일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로빈 후드의 모험’이 만들어진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다만 배경이 캘리포니아인 건 일종의 조크이려니.

로빈 후드가 실존인물이건 아니건 그는 자유와 정의를 대변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인간 본능의 산물로 해석되기도 한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제임스 파울러는 “인간은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가난한 이에게 나눠주려는 ‘로빈 후드 본능’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름만 다를 뿐 로빈 후드는 동서고금에 두루 존재했다. 홍길동이나 양산박의 급시우(及時雨) 송강은 동양의 로빈 후드였다. 살바토레 줄리아노(이탈리아), 람피앙(브라질), 루이스 파르도(페루)는 지금도 회자되는 실존 의적이다.

‘고상한 도적’(에릭 홉스봄)에게 민중은 왜 이리도 열광할까. 산적을 뜻하는 ‘밴디트(bandit)’의 어원은 이탈리아. ‘법과 권력의 테두리 밖에 있음’을 의미했다. 제도에 속박되지 않는 낭만, 어려운 이를 보살피는 숭고함. 명분과 이상의 찰떡궁합이었다.

하지만 산적은 제도라는 우산 아래 피어난 버섯이었다. 국가 생성 이전엔 산적이란 개념도 없었다. 로빈 후드는 ‘중앙권력이 못 미치던 시절 봉건세력을 무력화시킬 구실’(책 ‘밴디트’)로 해석되기도 한다. 동양의 양산박도 임금을 부정하진 않았다.

경계는 넘어서되 사회 존립의 가치 앞에선 엇갈렸다. 떠나거나(홍길동), 죽거나(수호지), 우산 아래 고개를 숙였다(로빈 후드). 정착민 시대의 방랑하는 노마드(nomad·유목민). 척박한 삶에 단비였으나 간간이 내릴 때 사랑받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