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답사기 30선]<9>지중해 문화기행

  • 입력 2007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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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니에서 에게 해로 넘어가는 해는 마지막 힘을 다해 미처 태우지 못한 붉은 기운을 지평선에 뿌려 놓는다. 이것은 석양제라 이름 붙여야 할 것만 같다. 짧은 순간 모두가 신화의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장엄한 태고의 의식이었다.》

지중해 여인의 깊고 두터운 눈길에 스쳐본 적이 있는가. 수십 일 동안 배를 타고 지중해를 왕복한 내게 지중해의 추억이란 오디세우스의 방랑기, 소크라테스의 명징한 지혜, 오셀로의 뜨거운 감성이 애매모호하게 뒤범벅된 수염 긴 사내들과 그들의 귀향을 고대하며 코발트빛 수평선을 응시하는 여인들의 햇빛에 살짝 데인 눈빛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중해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대륙에 둘러싸인 바다를 말한다. 세상에 바다도 많고 (일반적인 의미의) 지중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토록 인간과 자연이 혼과 살을 알맞게 섞어 가며 매콤달콤하고, 냉정과 열정이 뒤섞이며, 화려 담백하면서도 독특한 문화를 탄생시킨 곳은 흔치 않다. 저 동쪽 끝, 해가 떠오르는 동아지중해(한반도 서해)를 빼놓고는.

기후 풍토가 전혀 다르고 피부색과 언어가 같지 않은 여러 인종이 제각각 만들어낸 역사의 강물이 흘러들어 섞이고, 다시 물결 따라 상륙해서 또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한다. 그래서 그곳에는 온갖 것이 다 있다. 대전쟁과 평화가 있고, 춤과 음악이 흐르는가 하면 미술과 문학이 공존한다. 그뿐만 아니라 점성술과 신화 종교가 함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철학자와 상인이 휴머니즘과 자본주의 논쟁을 벌이는 곳이다. 그래서 지중해는 물의 집합체가 아니라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처럼 온갖 종류의 의미 깊은 문화가 탄생한 자궁이고, 인류의 정신이 잉태된 모태이다.

‘지중해 문화기행’의 저자는 소아시아의 시각으로 동아지중해에 사는 우리들의 손을 붙들고 그만이 볼 수 있는 유럽 지중해로 안내한다. 그는 관념이 아니라 사실을 전달한다. 지중해 문명의 주춧돌은 유럽의 백인들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이집트와 소아시아에 사는 유색인들이 놓았다는 사실.

그는 동부지중해 남부지중해 북아프리카지중해 서부지중해를 샅샅이 여러 번 발품을 팔아 뒤지고 다니면서 거의 모든 분야를 말하고 있다. 자연과 문화에 대해서만 극찬하는 이들과 다른 마음으로, 이곳이 사람들의 터였음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수천 년 전의 조각과 그림 속에 존재하는 여신들, 르네상스의 환한 살결을 지닌 여인들, 근대문학 속에서 어두운 고뇌에 찬 사람들, 지금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노천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홀짝거리는 생기발랄한 여인들, 바자르(시장)에서 낙천적인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는 상인들이 책 속에서 뛰쳐나와 독자들을 껴안을 것만 같다.

역사는 과거 또는 현장과 살을 섞는 작업이다. 문화답사 또한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이 정도의 열정과 치밀한 관찰, 역사와 문화는 물론이고 가슴 아픈 현대정치에 이르기까지 온갖 다양하고 구체적인 지식, 거기에 더해 사물과 인간에게 이렇듯 농도 짙은 애정을 표시한다면 꽤 대단한 역사학자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그런 그가 지중해를 통해서 동아지중해의 우리들과 온 인류에게 던지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혹, 자연과 인간과 문화가 더불어 살아가는 조화와 합일의 세계관은 아닐는지.

윤명철 동국대 교수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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