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위선의 역사 벗겨보니…‘커닝, 교활함의 매혹’

  • 입력 2007년 4월 1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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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닝, 교활함의 매혹/돈 허조그 지음·이경식 옮김/407쪽·2만3000원·황소자리

도발적이다. 장난기가 넘친다. 독자를 이리 저리 끌고 다닌다. 스스로를 엄숙주의자, 경건주의자, 도덕주의자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라면 읽지 않는 것이 좋겠다. 교활하고 사악한, 그래서 ‘악(惡)’이라고 적대시하며 밀어냈던 윤리관에 혼돈이 생길 수 있다. 스스로 교활하지 않다고 생각해 온 사람들을 심히 불편하게 만든다.

이 책은 16세기 중반 영국 스코틀랜드의 목사 존 켈로가 아내 살해 혐의로 교수대에서 처형당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켈로는 아내를 사랑한다고 했다. 그러나 성공하려면 아내를 죽여야 한다는 ‘악령’의 사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고백한다. 켈로는 살인 전 유언장을 작성해뒀다. 자신의 모든 재산과 아이들의 양육권을 아내에게 양도한다고…. 아내를 죽인 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유유히 설교를 한 뒤 신도들을 집으로 초대해 허공에 매달린 아내의 시체를 발견하도록 한다. 그리고 본인은 기절하는 척까지 했다.

목사로서의 윤리관, 아내에 대한 살의(殺意)는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적대적이기까지 한 두 가지 감정이 한 인간의 가슴속에서 태평스럽게 공존한다. 목사뿐만이 아니다. 역사상 오디세우스만큼 교활한(또는 지혜로운) 인물이 없다.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뒤 귀환하던 그는 아내 페넬로페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그는 바다의 요정 칼립소와 7년이나 동침을 했다. 죄의식에 시달리면서도 칼립소가 놓아줄 때까지 길을 떠나지 않는다.

저자는 동서양, 현대와 과거를 휘저으면서 독자들에게 ‘악당’과 ‘바보’라는 이분법의 주술로부터 빠져나오도록 유도한다.

볼테르와 흄, 홉스, 애덤 스미스 등의 사상가에서부터 섹시 배우 패멀라 앤더슨, 피라미드 회사의 영업정책, 원리주의 목사 부인의 불륜 등까지 종횡무진 오가는 이야기에서 저자의 박식함이 드러난다. 또 희대의 사기 사건들을 모아 그 기상천외한 얘기들로 독자를 즐겁게 한다.

하지만 그가 겨눈 화살의 최종 종착지는 어떤 목적을 위해 선택하는 수단의 윤리적 기준이 가진 위선과 가면을 벗겨내는 데 있다. 교활함은 멀리 있지 않다. 그 교활함을 뒷받침할 수 있는 수많은 상황논리도 언제든 남을 속이는 사람을 지탱하게 해 준다. 책을 읽고 나면 ‘나는 교활하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궁금하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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