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답사기 30선]<4>강석경의 경주산책

  • 입력 2007년 4월 1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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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내 젊은 날 가을 들판을 걸었던 일이 떠오른다. 농부들이 분주하게 추수하는 들녘에서 “나는 아무것도 거둘 것이 없구나” 하고 상심했던 기억이. 그때 내가 생각한 추수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영혼의 수확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세속의 성취는 아니었을까.》

고즈넉한 경주, 땅과 사람들의 풍경화

강석경의 글은 편안하다. 쉽다는 뜻은 아니다. 뭔가 여운을 남겨 주기 때문이다. 소설도 좋지만 기행문이 나는 더 좋다. 내가 풍수를 전공하며 답사를 해 왔기에 그럴 것이다.

그와의 인연은 30년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안다고 하지 못한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경주산책에서도 알 듯 모를 듯한 그의 사고가 잠재되어 있다. 그래서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다. 경주에 터를 잡은 지 얼추 20년은 넘었을 것이다. 그의 경주산책은 그런 결과물이니, 내용을 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좀 과장하자면 경주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본다.

책 첫머리는 ‘내가 경주로 돌아온 것은 근원으로의 회귀이다’로 시작된다. 그는 그것을 자연이 가르쳐 주는 근원이라 표현한다. 나도 경주에서 자유를 바라며 살아갈 수는 없을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식혜골에서 만난 누비장 김혜자 선생과의 만남에서 “도를 닦는다는 생각조차 없이 똑같이 반복하다 보면 자기 반영이 먼저 된다. 창작 이전에 자기 실상을 먼저 본다”는 술회는 마치 그의 작품세계를 엿본 듯한 느낌이다. 특히 고분군에서 느낀 감회는 “신라인들의 자유로움, 미에 대한 찬사, 올곧은 충정, 종교심”이다. 자유는 그가 추구하는 최종 목표인 듯하다. 대릉원에서는 “자연과 자유를 사랑하는 나의 본성에 유목민의 피가 흐르는 것일까” 하고 묻는다.

유목민 얘기는 이 책에서 자유와 함께 키워드 역할을 한다. 조상을 떠올리며 자유에의 갈망을 말하는 것은 대인 기피 성향을 가진 작가에게는 좀 어울리지 않는다. 교동을 둘러보며 “이렇게 고즈넉이 전통을 지켜 온 사람이 있어서 경주가 보다 경주답고, 이끼 낀 교동 기왓골이 더욱 아늑해 보인다”고 하는 것을 보면 자유와 전통과 사람에 대한 정은 그에게 어쩔 수 없이 모순되지만 함께 가야 할 그 무엇인 것처럼 생각된다.

그는 갈 데 없는 작가다. 그릇을 좋아하는 이유가 비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비어 있음을 빈곤이 아니라 풍요이며 근원에 다가가는 계단으로 본다. 지금 그는 혼자 산다. 나는 그의 그런 면에 매력을 느낀다. 나는 철저한 가족주의자다. 말을 조금 바꾸면 세속적으로 얽매인 일이 많다는 뜻이다. ‘방랑자의 상실감’도 괴롭겠지만 세속의 인연도 고통이기는 마찬가지다.

무열왕릉에서 그의 친구는 “여기서 죽고 싶다”고 취한 듯 말한다. 참으로 풍수적인 표현이다. 그렇다. 여기 영원히 있고 싶다는 생각이 명당이 된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그는 경주 전역을 명당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가 그곳을 떠나지 않는 것도 경주가 명당이기 때문이리라.

책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그림들이 편안한 느낌을 더한다. 산책은 모름지기 강석경처럼 할 일이다.

최창조 풍수지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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